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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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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계론적 인식론에 기초한 의학은 다른 환원론적 과학처럼 지구 생태계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서구 과학과 의학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에게는 지성이 없으며,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체는 서로 연관성 없는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살아 있는 전일적인 생명체인 지구 전반에 불행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변화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지구 자체의 본디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변화를 꼽는다면, 박테리아가 내성을 가질 수 없는 물질을 만들어내려는 끊임없는 시도다.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박테리아가 없었다면, 지금껏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말이다. 지난 80년간 지구상의 모든 박테리아, 나아가 몇 배도 넘는 지구상의 생명체를 전멸시키고 남을 만큼의 항생제가 생산됐다.......
지구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려면, 치료와 의약품에 대한 접근법도 새로이 모색해야 한다. 약은 분명히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의약품이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을 면책할 수는 없다. 부분의 집합체 아닌 유기체 지구관에 터해 의약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모든 생명체와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능력에 토대를 둔 치유체계, 생명사랑에서 비롯한 치유체계, 잊어버린 고대 인식론과 연결된 치유체계, 즉 ‘살아 있는 의학’을 탐구해야 한다. 조제약 대신 약초를 쓰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의학이다.
기계론적 인식론에 기초한 의학은 그 역사가 1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잘못된 이해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지구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약을 생산해내고 병을 치료해왔다. 가이아는 이런 일에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192~!194쪽)
이 책의 저자가 쓴 다른 책 『SACRED PLANT MEDICINE』을 읽었다. 북미원주민 약초이야기다. 대부분 한의학이나 민간요법이 쓰는 약초일 뿐만 아니라 쓰임새도 기본적으로 같아 놀랐다. 그보다 더 유심히 살핀 것은 저들만의 독특한 약초전승이다. 이 약초전승은 낭·풀을 지적 존재로, 영으로 존숭하는 그들의 삶이 빚어낸 이를테면 “서사narrative”본초학이다. 저들의 서사본초학이 야생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고등문명에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문명 한복판을 관통해온 제도적 한의학은 서사본초학적 본성의 주요부분이 결락되고 도가·유가적 소박합리성에 터한 정교한 복합처방이 발달했다. 북미원주민의 서사본초학과 본질상 동류인 것은 우리 민간요법인데 도구적, 인본적인 요소가 훨씬 강하다. 역사·문화의 차이에도 이 전승들은 “조제약 대신 약초를 쓰는” “살아 있는 의학”에 해당한다.
살아 있는 의학은 “모든 생명체와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능력에 토대를 둔” “생명사랑에서 비롯한” “잊어버린 고대 인식론과 연결된” 치유체계다. 이 요건이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실은 하나다. 인간은 자연, 특히 낭·풀과 분리된 고립적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 그래서 공감 가능하고, 그래서 타고난 사랑이 존재하고, 그래서 과학의 분석·환원 없는 인식과 연결되는 것이다. 모든 사달은 인간이 자연을 분리해내고 그것을 기계적 조작 대상으로 삼은 데서 일어났다. 낭·풀을 영적으로 공명하고 인식하고 사랑할 때 살아 있는 의학이 복원된다.
나는 65년을 낭·풀 인간으로 살았다. 40년을 상담자로 살았다. 15년을 한의사로 살았다. 내 삶을 통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운명을 천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낭·풀의 생명이치를 체현했다. 이제 최종의 제의를 준비한다. 거룩하고 질탕하게 살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