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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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는.......영혼의 정수를 교류하거나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나눌 때 몸속으로 흘러드는 그 즐거운 느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생명체와 경험했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이런 교감은 지구상에서 인류가 누려온 삶의 역사적인 경험 중에서 아주 일상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일상의 일부를 구성하는 이런 정서적 교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 결과 이런 경험을 표현할 일반적인 언어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22~23)

 

할아버지는 앞으로 몸을 기울인 채손을 컵 모양으로 오므려 반짝이는 수면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잠시 후 반짝이는 물을 내 입술 가까이 대어주면서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얘야, 이 물 마셔본 적 있니?”

  비스듬한 내 시선에 할아버지의 두 눈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벌렸다.......물은 아주 달콤하고 시원했다. 몸이 그것을 반기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할아버지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맛이 좋지?” 할아버지의 물음에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할아버지와 나는 다시 연못가에 누었고, 그 무언가가 다시 할아버지 몸에서 내 안으로 흘러들었다.......

  인류 전체는 물론이고 인간 개개인에게 야생의 물로 회귀하는 이 여행은 매우 긴 여정이다. 그러므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오래 전에 생긴 우리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부터 찾아야 한다.(19~20)

 

지난 65년 내 삶을 포용하고 분발시킨 것은 야생의 풍경과 소리와 냄새와 맛, 그리고 살갗 느낌들이었다. 1950년대 중반 강원도 평창 오대산 자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살았던 몸과 마음에 야생은 생각보다 깊고 넓게 배어들었다. 30년 동안 내 곁을 지키셨던 할머니 말씀과 내 기억을 따라 야생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나는 생후 6개월 만에 걷고 한 달 뒤에는 뛰었다. 거기서부터 내 야생 참여적 삶이 시작되었다. 사람에게 치대거나 조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업어준대도 마다했기 때문에 처녀 포대기를 새것인 채로 조카한테 주었다. 아침에 씻기고 먹여만 놓으면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산골마을이기 때문에 논은 거의 없고 몇 십 걸음 밖은 바로 숲과 시내로 이어진 비탈 밭이 있었다. 밭에서 거기 심어진 식물들을 먼저 만났다. 나는 그 식물들의 생김새, 색깔, 서로비비며 내는 소리, 냄새, 만질 때 느껴지는 촉감에 늘 처음처럼 매료되었다. 옥수수, , , 수수, 들깨, 고추, 감자, 오이, 호박.......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밭을 한 바퀴 돌았다. 내 말소리를 듣고 할머니께서 누가 왔느냐고 큰 소리로 묻기 일쑤였다. 순례가 끝나면 나는 커다란 돌배나무와 인사를 나누고 서쪽 언덕길을 내려갔다.

 

거기에는 버덩(강원도 사투리로는 버당이라 했는데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달리 내 버당은 우거진 평지 숲이었다.)이 펼쳐져 있었다. 버덩은 어른 눈에는 대수롭지 않지만 아기 눈에는 한없이 넓고 안온한 천국이었다. 온갖 낭·풀에 휘감겨 나는 걷고 달리고 앉고 눕고 말하고 흥얼거렸다. 찔레를 꺾어 먹거나 해당화 꽃잎을 따먹기도 했다. 관목 가지 위에 앙증맞게 놓인 새둥지를 보고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봄 연두, 여름 초록, 가을 빨강, 겨울 하양에 감싸인 나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낭·풀이었다.

 

버덩의 서북쪽으로는 냇물이 흘렀다.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오대천 지류 가운데 하나다. 그 물은 마시기도 하고 세수도 하고 헤엄도 치고 고기도 잡고 물수제비도 뜨고 썰매도 타고 겨울 끄트머리 떠내려가는 커다란 얼음판을 타기도 하는 풍요 그 자체의 넘실거림이었다. 어린 시절에 꾼 꿈들의 많은 부분이 바로 여기를 무대로 삼았다.

 

동쪽에 우뚝 솟은 산은 가파르기도 할 뿐만 아니라 큰 나무들이 많아 어둑한 숲을 이룬다. 게다가 멧돼지, 늑대, 심지어 호랑이 같은 산짐승 이야기들도 간직한 풍경이라 아기에게 버덩처럼 친숙해지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추억의 매듭을 만들어준 공간이었다. 예컨대 잣, 개암, 머루, 다래, 매자, 산사나무 열매(강원도 사투리로 애광이라 한다.)을 따먹으려면 깊은 숲으로 가야 했다. 눈 내리는 날 활강썰매를 타려면 높은 숲으로 가야 했다. 할머니께서 산나물을 채취하실 때 따라가려면 먼 숲으로 가야 했다. 무엇보다 그 산이 품은 특별한 야생은 바로 호랑이굴이라는 이름의 우묵한 바위절벽에 있었다. 백두대간 수호신인 큰 호랑이가 그 굴에 올라가 구멍 끝으로 강릉 앞바다를 보고 나서 우리 집 앞마당을 지나 월정사를 거쳐 백두산으로 간다는 전설 때문에 자부심 어린 공포와 더불어 신비로운 동경을 간직하게 했으니 말이다.

 

우리 집 밭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6번국도가 흐른다. 북쪽으로 곧장 가면 월정사가 나오고 동쪽으로 꺾어져 오대산을 넘으면 6번국도 동해안 기점인 연곡이 나온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1965년 가을에 그 6번국도 남쪽 길을 따라 서울로 떠났다. 야생의 상실과 향수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문명과 그 일부인 인간을 마주한 서울 생활이 내게 준 타격은 실로 다대했다. 그 타격은 우울증을 내 삶의 기조로 자리 잡게 했다. 내 삶은 실패와 방황으로 누덕누덕해졌다. 그때마다 죽음의 늪에서 나를 건져낸 것은 야생의 기운과 언어였다. 무엇보다 내게 배어든 낭·풀의 생명 솔루션이 나를 살아남게 한 이치principle로 작동했다. 그 이치가 바로 영spirit이다. 온전한 충일이 온전한 간신艱辛이라는 영의 구사驅使가 나를 치유하고 소생시켰다.

 

간신은 뭔가?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것이). 이게 축복일까? 그렇다. 단연. ·풀의 영에는 잉여가 없다. 잉여는 불안과 탐욕과 무지의 현현三毒이다. 3독은 야생과 교감하고 유대하지 못하는 분리/단절의 소산이다. 분리/단절에서 합치不二而不一로 회귀하려면 매순간 충일하게 겨우겨우 살아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법, 그러니까 낭·풀의 솔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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