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5. 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싸우는 식물에서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말했습니다. “살벌한 자연계에서 식물이 드디어 도달한 경지는 무엇일까?......상리공생의 협력 관계........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이익을 우선하고 먼저 챙겨줌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었다........인류는 어떤가?.......인류는 모든 생물을 몰살하고, 모든 식물을 멸종으로 내몰 것이다. 그러면 생명 탄생 이전의 지구 환경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힘으로 식물이 바꿔 놓은 지구 환경을 이윽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다른 생물과 공존하기를 선택한 식물이 옳은지, 다른 생물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고 멸종으로 내모는 인류가 옳은지, 답은 곧 나올 것이다”(232~235)

 

다들 자비의 붓다와 사랑의 예수를 높이고 따르는 숭고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일으키는 수승한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어이 상실한 자기 아첨입니다. 인간이 그만큼 타락했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무자비와 증오가 인간의 보편 악이 아니라면 구태여 이런 당위가 왜 나왔을까요. 식물은 인간의자비와 사랑을 알지도 하지도 못합니다. 아니. 알 필요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 아니. 알 수도 할 수도 없습니다. 식물에게는 당위와 자연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 이치를 따라 충실히 산 결과가 상리공생의 협력 관계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연히 식물에게는 인간의으스댐과 생색냄이 없습니다. 식물의 자연이고 이치니까요.

 

식물의 생명 활동은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이익을 우선하고 먼저 챙겨줌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가져오는세상을 펼쳐놓았는데 인간이 이것을 홀라당 엎어버렸습니다. 이 행위는 무자비이며 증오일까요, 인간의 자연이며 이치일까요? 이 간극이 인간 비극의 핵심입니다. 간극을 없애기 위해 자비와 사랑을 다시 소환하는 것은 여전한 동물적 방법입니다. 동물은 도망 이외의 방법을 모릅니다. 도망으로는 종말의 상황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인문운동 또한 도망입니다. 그냥 식물의 생명 이치를 따라 살면 됩니다. 답은 오직 이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린세러피입니다. 저의 그린세러피를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식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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