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 넷째 구비-맞은편 진실을 보이다
고통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은 아픈 사람의 시지를 칼 같이 세우는 것입니다. 그 칼 같은 만큼 삶의 전경을 보려면 맞은편 진실이 필수입니다. 지금 얼마나 아픔에 시달리고 있든, 아무리 살았으나 사실상 죽은 삶을 살든,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닌 한, 아픈 사람의 생명에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엄존합니다. 고통의 어둠 맞은편에 생명을 지키는 밝은 에너지가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도저한 진실입니다. 고통 한복판에서 이 진실에 유념하기 힘든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단 하나의 격정이 다른 모든 감정을 제압합니다. 그러나 격정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빛이 비췹니다.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구비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모든 아픔은 생명이 있고서야 가능한 아픔입니다. 생명이 먼저 있었습니다. 거기 빛 또한 먼저 있었습니다. 이 장엄한 진실을 다시금 오소소 소름 돋는 맑은 마음으로 직면해야 합니다. 가령, 어머니한테 버림받아 우울증이 벼락같이 내려왔다고 할 때, 어머니가 내게 생명을 준 사건이 먼저 천둥처럼 울렸다는 사실을 비수에 찔리듯 알아차려야 합니다. 버림받은 슬픔, 원망, 분노, 외로움, 그리움, 모두 살아 있기에 그 생명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입니다. 피고름이 섞인 눈물일지라도 그것은 죽은 자의 눈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 생명 표지입니다. 맞은편 진실의 언덕에는 낯선, 그러므로 더욱 웅숭깊은 그 빛 부신 황금나무가 우뚝 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한, 내 생명에 엄연히 존재하는 빛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는 까닭이 존재합니다. 공포·불안, 우울이란 이름의 내 어둠 저 건너편에 시리도록 밝은 빛이 있어, 그 당당함이 있어, 세포 하나하나가 탱탱하게 발기하는 전율이 있어, 마디마디 후들거리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블루에 뒤덮여서 숨죽인 채 웅크렸을망정 그렇게 묵묵히 견뎌준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엎드려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코로나블루보다 작지 않다는 진실입니다. 코로나블루보다 더 큰 나이기에 여태까지보다 더 큰 인생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비 돌아서면 더 큰 인생의 지평선이 펼쳐져 있습니다. 설레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