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3) 그린세러피 그물-코로나블루의 여러 요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물리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입니다. 이것은 디지털 사회의 어두운 측면으로 지양해야 할 과제였다가 팬데믹 사회의 어기면 안 되는 규범으로 변신하면서 인간에게 진정한 친밀과 대면이 무엇인지 정색하고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공동체를 이루려 할 때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친밀과 대면인데, 문명과 자본은 이들을 가학과 수탈의 계기로 타락시켰습니다. 가학과 수탈의 세계화는 인간 공동체를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를 교란했습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코나블루입니다. 코로나블루는 물리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친밀과 대면의 반대말인가를 묻습니다.

 

거리와 대면 여부가 이율배반적 성격을 띠는 것은 인간이 이동성을 본질로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로 보면 필연입니다. 진정한 공동체의 성립 요건인 친밀은 밀착이 아니고, 대면은 접면이 아님에도 동물성 때문에 혼란이 일어납니다. 식물의 분산 시스템은 이런 혼란을 야기하지 않습니다. 평등하게 적확하게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모듈 상호간에는 역동적 그물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모래알처럼 각각 떨어져 있는 분산으로는 더불어 통일된 생명체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른바 네트워크 사건을 일으킵니다. 네트워크 사건, 그 진정한 공동체 운동이야말로 코로나블루가 신자유주의 인간에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이것이 그린세러피 그물입니다.

 

  (4) 그린세러피 창발-인간이 식물을 함부로 대놓고 아무 생각 없이 착취하고 죽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원인은 아마도 식물의 감각에 대한 무지일 것입니다. 먹든 집을 짓든 땔감으로 쓰든 거름을 만들든 심지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꺾고 베든 인간은 식물에게 아무런 감사도 죄의식도 느끼지 않습니다. 저 심원한 불교의 가르침에서조차 식물은 깨달음의 주체도 자비의 대상도 아닙니다. 인간의 가소로운 무지 그 너머 식물은 인간의 오감에 해당하는 모든 감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섬세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인간에게는 없는 다른 특별한 감각을 최소한 15가지나 지닌 초감각의 주인공입니다.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식물이 지닌 저 놀라운 신체감각은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식물의 분산 시스템은 네트워크 운동을 소환하고, 네트워크 운동은 군집 이익을 창출합니다. 군집 이익은 개별자들이 고립되어 소통하고 동조하지 않을 경우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을 생성합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바로 초감각 발현입니다. 식물의 초감각은 생명 활동 전반에 필요한 모든 스펙트럼으로 정확하고 정밀하게 번져갑니다. 매순간 새로운 창조의 지평선을 열어가므로 적체도 결핍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 기존 차원을 넘어갑니다. 그것이 생명 자체의 건강함입니다.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구가할 수 있는 예측불허의 시너지, 바로 이것이 그린세러피 창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