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1) 그린세러피 영성-그린은 물론 식물을 뜻합니다. 식물로 코로나블루 치료한다는 말은 포괄적입니다. 공포·불안과 우울을 치료하는 데 식물을 약으로 쓴다는 이야기 정도라면 구태여 그린세러피라는 용어를 만들기까지 할 필요가 뭐겠습니까. 한약은 차치하고, 심지어 모든 양약의 95%가 식물에서 추출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약의 기원을 이루는 식물이 전체 식물의 10% 미만이라는 사실입니다. 90% 이상의 식물은 알지도 쓰지도 못하는 현실이기에 그린세러피는 더 큰 풍경을 그립니다. 풀과 나무를 개체로 보든 숲 전체를 보든 식물을 도구나 수단으로만 파악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고야 비로소 그린세러피의 진면목과 조우하게 됩니다.

 

식물은 도구가 아닙니다. 효능 따라 이용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근간이며 시원입니다. 모든 감각과 언어를 열어 온전하게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도록 애써야 하는 동반자입니다. 인간의 숭고하고 우아한 삶을 더불어 펼쳐야 할 서로주체입니다. 그 무엇보다 식물이야말로 인간이 빚어야 할 장엄을 상상하도록 하는 영성의 본진입니다. 인간보다 위대한 대문자생명을 향해 열린 영성은 허구입니다. 인간만의 공동체 안에 닫힌 영성은 환유입니다. 진정한 영성은 포유류·파충류·양서류·어류로 번져가다 마침내 계의 가장자리 넘어 식물로까지 번져가는 생명의 소통, 상호양육, 그리고 제의입니다. 이것이 그린세러피 영성입니다.

 

(2) 그린세러피 분산-식물은 인간과 다른 생명 체계를 지닙니다. 인간이 중앙집권적 통제를 받는 장기들의 유기 체계인 반면 식물은 지방분권적 모듈들의 군집 체계입니다. 인간은 뇌 일극집중구조인 반면 식물은 수많은 평등 뇌의 분산 시스템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식물의 이런 생명 체계를 전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중심주의가 식물을 뇌가 없으므로 지능도 없는 하등한 생명체로 곡해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대 방향의 문제도 있습니다. 식물에 무지함으로써 인간 생명 체계를 뇌 중심으로만 이해하게 한 편향의 성찰 기회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인간 문명 전반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코로나블루는 그 결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간은 식물 생명 체계를 온전히 알아감으로써 자신의 생명 체계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 체계 자체와 그 해석의 편향을 보정하지 않으면 인간 자신은 물론 다른 생명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블루가 공포·불안, 우울의 병적 상태라 할 때, 기존의 주류의학 시스템은 뇌를 겨냥해 약물을 투여할 것입니다. 그린세러피는 뇌를 겨냥한 약물이 뇌로만 들어가거나 뇌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소화관 전체에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피부도 주시합니다. 기분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개인 너머도 꼭 응시합니다. 이것이 그린세러피 분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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