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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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가레: 나는 책 제목을.......식물 존재를 통하여through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내게 통하여는 맑은 공기를 가져다주는 식물 덕분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식물은 다소간 우리 자신의 생성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 식물은.......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있는 그대로.......고려하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해주는 환경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160~161)

 

마더: 식물의 세계, 혹은 그 세계 안의 어떤 존재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서 식물의 세계로 열리는 감각을 키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식물의 생명을 경험하고 경험하는 토대 위에서, 인간관계가 더 이상 경제적이지 않고 생태적 공유에 도움이 되도록 인간관계를 리모델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327)

 

에필로그다, 마침내. 이리가레는 식물 존재를 환경으로 자리매김 한다. 식물을 도구적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식물 존재의 무엇이 어떻게 성차화 육성을 추동하는지 말할 수 없는 소이다. 마더는 인간이 식물 세계로 열려야 한다는 것과 그 경험을 토대로 인간관계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것을 함께 말함으로써 일방적 태도는 벗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슨 경험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리모델링하게 추동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레이첼 카슨의 말은 (자연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최영도의 말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각자 무슨 의도로 한 말인 줄 아는 만큼 두 말의 양립 가능성을 수긍한다. 내 경험은 이렇다.

 

식물의 사유를 읽고 주해리뷰를 쓰는 동안 일어나는 갈증, 그러니까 저자들이 표상하는 기호로는 식물이 와 닿지 않아서 생기는 답답함을 견디기 힘들어 식물 책을 6권 째 읽고 있다. 최근에는 광화문 교보 가면 아예 식물 관련 서고 앞에 가방을 내려놓고 진(?)을 친다. 독서, 그러니까 알아가는 일이 느껴가는 일에 도움이 되는가? 된다. 그것도 많이. 저마다 지닌 곡절을 함부로 짐작하면 안 되지만 이리가레와 마더가 실제 개별화된식물 공부를 하는지 내내 궁금했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공부와 그들의 함구 사이에서 어슬렁거린다.

 

물론 이런 시도의 들머리임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철학자가 아니라 임상가다. 나 자신과 내 삶, 특히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 자체가 깃들어야 할 식물성에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느낌과 실천이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식물 생명은 내 개체적 생명과 인생의 기조다. 나아가 세상을 평등하고 평화롭고 평범한 생명 네트워킹으로 만드는 공적 참여의 모델이기도 하다. 꼭 그만큼, 식물 생명의 소식과 생기와 구조는 나를 관통한다. 나는 그린샤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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