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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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가레: 우리의 성장 방식이 단순히 연속적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발전에는 불연속이 필요합니다. 불연속성은 우리의 개별성과 다른 생명 존재들 사이에 존중하는 관계가 일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생명존재의 역설은 공유하려면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53~154)

 

마더: 경작은 영혼 내재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영혼 자체가 주체 내부 공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들 사이 시공간에 걸쳐 있습니다. (인간을 사이-영혼이라 부릅시다.).......사이-영혼을 경작하는 것은.......살아 있는 존재들 사이의 차이를 육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321)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사회 규범으로 제시한 거리두기와 비대면은 곧바로 코로나블루의 원인으로 작용해 딜레마가 되어버렸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그 이전의 친밀과 대면으로 돌아가면 딜레마가 풀리나? 얘기가 그리 쉽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으랴.

 

사실 그 동안 인간사회는 제대로 된 공동체를 꾸리지도 못하면서 지나치게 친밀과 대면을 강조 또는 강요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밀착과 접면의 극단 속에서 가학과 수탈의 도구 노릇을 했다. 지배층의 감언이설 이상의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밀어닥치지 않았더라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대면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가학과 수탈 구조를 붕괴시켜야만 했다. 자발적 운동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코로나19가 삽시간에 전 지구적으로 밀어붙여버린 것이다. 그럼 이대로 살면 되나? 얘기가 그리 쉽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으랴. 이 딜레마는 차원이 다른 해법을 요구한다.

 

인간이 인간적 방식으로 거리두기와 비대면, 친밀과 대면을 오용함으로써 빚어진 극단적 상황은 이제 인간적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식물적 패러다임이 답이다. 식물은 개체 구조도 분산된 모듈들의 네트워킹일 뿐만 아니라 개체들이 모여 숲을 이루어 살 때도 그 원리를 지킨다. 숲은 숲의 방식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식물들의 적절한 지상 거리와 지하 대면의 역설을 조절하면서 틈을 낸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숲은 숲의 기준으로 이상적인 상태를 향해 무한한 여정을 계속한다.

 

인간은 식물의 빛으로 개체 생명 패러다임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인간은 식물이 아니다. 그러나 식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다. 식물의 가장자리에서 식물에 힘입어 식물에 길들여져 심지어 식물을 먹으며 살아가는 한, 식물 생명 원리의 일정 부분이 인간 생명에 유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마더 어법을 빌리자면 우리는 아직 식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은 숲의 빛으로 인간사회 패러다임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인간사회는 숲이 아니다. 그러나 숲이 아니면 존속할 수 없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숲에 힘입어 숲에 길들여져 심지어 숲을 먹으며 살아가는 한, 숲의 생명 원리의 일정 부분이 인간사회에 유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마더 어법을 빌리자면 우리는 아직 숲을 발견하지 못했다.

 

땅 위에서 보면, 푸나무는 서로 떨어져 각각 수직으로 자라며 살아간다. 팔 벌려 옆 푸나무를 잡지 않는다. 그 사이 거리에서 차이가 육성되며 존중이 생성된다. 땅 아래에 귀 기울이면, 푸나무는 서로 어우러져 수평으로 자라며 살아간다. 뿌리 끄트머리끼리 대화clicking를 한다. 그 친밀함에서 소통이 육성되며 공생이 생성된다. 비대칭의 대칭을 감지해야 푸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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