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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평점 :
이리가레: 우리의 자연 정체성에 충실한 사회적 조직을 짜고 그 정체성을 개별화하고 키우는 일에 기여하는 작업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에 본질적인 자연 환경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발전시켜야 할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도 소홀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 동반자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학자들, 시인들 그리고 문학 전반의 독서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기쁨을 얻거나 위안을 받은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기쁨과 위안이 일어날 때는.......자연 환경에서였고 또 자연에 대한 사랑의 공유와 함께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숲이나 산에서 내 탐구를 추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113~115쪽)
마더: 살아 있는 신체가 안으로 자란다는 것은 매우 병리적인 현상입니다........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곪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 전역에 걸쳐 세대를 망라하여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집단 화농의 통탄할 만한 결과를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환경 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자신을 회복하려면 밖으로 자라고 이상성장하는 법을 배워 우리 자신을 더 잘 잃어야 합니다. 그것은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비인간 타자들과 더불어 자라는 법을 아는 일입니다. 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는 숲입니다........ 더불어 자라는 것.......은 전체로 묶이지 않는 다자들의 내재 분열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산하지 않는 더불어-성장은 없습니다. 이것이 식물민주주의 공리입니다.(264~268쪽)
인간이 검증 않고 지니는 참으로 이상한 종자 믿음이 몇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바로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이다. 심지어 이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 오신한 채로 한 평생을 살다 죽는다. 나의 내부가 있으며 그 내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나한테만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걸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내 능력이 아니다. 나와 내 능력이란 개념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개별 인간이 가로채 전유한 것이다. 이 존재론적 ‘타락’을 외면하고 불교의 이른바 큰스님이라는 화상들이 걸핏하면 참 나를 찾으라고 을러대지만 그런 식으로 찾아지는 참 나는 참 나가 아니다. 아니래도. 아니라니까. 참 나~
참 나는 있지도 않는 나의 내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 참 나는 너에게서 찾아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너와 맺는 관계가 참 나다. 관계는 사건이다. 그 사건은 피부 표면에서 일어난다. 피부 표면이야말로 가장 깊은 곳이다. 피부 사건이 참 나다. 피부 사건을 일으키는 너는 다른 사람이다. 사람 이전에 동물이다. 동물 이전에 식물이다. 식물이야말로 참 나 사건을 일으키는 근원의 너다. 근원의 너는 모습으로 빛깔로 냄새로 소리로 맛으로 느낌으로 알아차림으로 받아들임으로 나를 관통한다. 네가 나를 관통하는 찰나마다 나는 나를 잃는다. 나를 잃어 참 나를 얻는다. 찰나마다 죽어서 찰나마다 새로이 태어나는 참 나는 더불어 일으키는 사건의 불연속적 연속이며, 비연장적 연장이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