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리가레: 문화 영역은.......같은 세계에 속하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공유를 허용하지 않는 규칙과 규범에 종속된 채 제대로 키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의 감수성을 살아 내거나 표현하는 양태에 의해, 또 타자의 타자성을 고려할 수 없는 다른 본능적 에너지 때문에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본능적 에너지는 공유보다는 소유나 전유가 목적이기 때문에 타자의 타자성을 고려할 수 없습니다........불행히도 우리의 전통은 신에게 닿기 위해 우리의 인간적 조건을 너무 빨리 건너뛰었습니다. 이는 은총보다는 고통을 안겨주고,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경험한 행복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원죄를 영원히 지속시킵니다.(105~106)

 

나는 식물 세계와 함께 하면서 자연적 속성을 상당히 회복하였고 다시는 거기서 떨어져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나의 자연적 속성이 다른 인간과 나누는 전면적 공유로 꽃피도록 만드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극복하고 우리의 인간성을 이루기 적합한 상태에 도달하여 진정으로 인간적 친밀성을 나누는 것은 무엇보다 더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무릅쓰고 이루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107)

 

마더: 우리가 식물들에게서 나타남을 기꺼이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간들 사이로 다르게 돌아가야 합니다........우리는 사회 세계에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홀로 있는 것이 가지는 숨겨진 여분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들 사이로 돌아갈 위험을 무릅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다른 방식 속으로 뛰어듭니다........이런 모험은 왜 위험할까요? 우선 이런 일들에는.......식물에게서 자라나는 존재의 현상성을 배우는 데 나만큼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나타남이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위험은 오해부터 즉각적 묵살, 우리와 식물 세계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연결성에 대한 비하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합니다.(257)

 

가장 큰 위험은 식물 생명이 드러내는 침묵을 공허한 말들의 재잘거림 속으로 빠뜨리고, 우리 자신의 나타남이 식물의 발아와 성장과 드러냄과 많은 것을 공유하며 거기 빚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식물에게 그들의 정당한 몫을 돌려줘야 한다는 점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자연에게.......해결책을 끈질기게 묻지 않는다면 이 세 가지 위험을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261~262)

 

아라한프로젝트. 숲속 절집 선객들이 대승을 참칭하면서 장구한 세월 동안 자행해온 독행獨幸 벌이 비밀사업 이름이다. 참선이라는 각고의 노력으로 획득한 행복이니만큼 독식하는 게 이치에 맞는다 생각이 저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모양이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미 형용모순이거니와 내 생각은 사뭇 다르다.

 

절집이 대도시 한가운데 있었다면 저들 가운데 과연 아라한이나마 몇이나 나왔을까? 모름지기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저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저들의 각성은 근본적으로 숲, 그러니까 식물 세계에 힘입은 것이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가 전해주는 입자며 파동이 암도 치료하고 자폐도 치유하는데 하물며 그 알량한 견성 하나 키워내지 못하겠는가. 저들이 그 각성으로 권위 삼고 밥그릇 챙기는 것은 절도며 사기다. 참으로 옹골찬 각성이 있는 자라면 반드시 인간들 사이로 돌아와야 한다.

 

인간들 사이로 돌아와 저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 인간들의 오해, 묵살, 비하는 물론 공격과 추방을 무릅쓰고 각성을 공유해내야 한다. 그리고 마더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1) 공허한 말들의 재잘거림 속으로 빠뜨리지 말고 식물 생명이 드러내는 침묵의 언어를 전할 것. (2) 인간의 나타남이 식물의 발아, 성장, 드러냄과 많은 것을 공유하며 거기 빚져 있다는 진실을 공유할 것. (3) 식물에게 그들의 정당한 몫을 돌려줄 것. 저 통속한 부처님 가르침과 사뭇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들은 참 부처를 놓쳤다.

 

참 부처는 풀이며 나무다. 저들이 무심코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입고 덮고 짚고 치는 일상에서 몸과 마음을 관통해 흐르는 풀과 나무의 푸른 생명을 개 무시한 채 허구 표상하고 있는 관념적 거대부처는 기독교의 거대(유일)신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거짓 부처다. 이 진실이 누락된 온갖 견성 ritual은 유치한 학예회 놀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