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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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가레: 땅의 열매를 찬양하는 일은.......신을 향한 기도로 바뀌면서 포기되었습니다.(77) 나는 이런(인용자 보충) 우리 문화를 뒤집어 놓아야 했습니다. 우리 문화가 내게 가르친 것을 전복해야 했습니다.(75)

 

마더: 자연의 다양성에 대한 경험을 복원하는 일은 조심스럽고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재구축할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는 일입니다. 자연의 다양성에 대한 경험을 복원하려면 단박에 해야 합니다.(230)

 

헨미 요의 먹는 인간에 이런 부분이 있다.

 

자그레브 중심부에서 네오고딕 양식 첨탑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성슈테판대사원.

이 사원도 유고 출신 가톨릭교 수녀인 마더 데레사의 내방을 기념해, 주로 거지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소를 두고 있다.

1991년 세르비아 측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루에 두세 명이 올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급식 인원인 80명을 넘는 굶주린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는 주린 배를 안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남자들 틈에서 급식소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겨우 5분 만에 사람들로 꽉 찼다. 문이 닫혔다.·······

어딘가에서 수프 냄새가 난다 했는데, 수녀가 여러분, 이걸 들어야 식사할 수 있습니다.” 하고 운을 떼더니 성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보류되었다. 누군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다음에는 기립해서 찬송가를 부른다. 숟가락을 꽉 쥔 남자들이 노래를 부른다. 악에 받친 듯 숟가락을 휘두르면서 노래하는 남자도 있다.

아니, 입만 뻥긋거리는 사람이 많다. 다리를 떠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의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훌륭한 자선이지만 좀 잔혹하다. 바로 음식을 나눠주면 안 될까?·······

찬송가가 끝났다.

아아, 그 뒤에 이어지는 남자들의 식욕은 대단했다.

다양한 민족의 피를 받은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똑같이 맹렬하게 달라붙었다.·······(154-156)

 

사하라시아 기원 거대(유일)신종교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땅의 열매를 직접 찬양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열매를 먹도록 은총을 내려주신 신을 향해 기도하고 있다. 땅의 열매를 직접 찬양하는 일은 그 다양한 열매와 그 다양한 열매를 먹는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풍요 제의다. 이 제의는 살아 있는 사건이다. 신을 향한 기도는 그 모든 다양성을 베어버리고 일자 존재에게만 귀속시키는 폭력적이고 파리한 잔혹 제의다. 이 제의는 죽어버린 사태다.

 

내가 신학을 접고 의학으로 돌아서면서 가장 먼저 버린 습관이 바로 신을 향한 식사기도였다. 잘못된 문화가 내게 가르친 것을 전복하는, 그러니까 자연의 다양성에 대한 경험을 복원하는 일은 단박에 해야 했다. 일거에, 다양한 땅의 열매 그 풍요를 향한 직접 찬양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이 찬양은 얼마나 다양한가. 이 기도는 얼마나 생생한가. 이 말씀은 얼마나 거룩한가. 이 전복은 얼마나 통쾌하며, 이 복원은 얼마나 상쾌한가. 그러므로 이 식사는 얼마나 유쾌한가.

 

사실 땅의 열매는 비단 먹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땅의 열매 아닌 푸나무가 없으니 푸나무와 그들이 이루는 네트워킹인 숲을 찬양하는 삶으로 인간은 급격히 전환해야 한다. 숲을 찬양하는 인간이 숲의 장엄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숭고해진다. 숲의 장엄을 닮을 때 비로소 우아해진다. 나는 필경 마음 아픈 사람을 치료해 푸나무가 되게 하고 마침내 숲을 이루게 하는 푸나무 의사며 숲 의사다. 그러려면 나는 푸나무에, 숲에 빙의되어야만 한다. 박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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