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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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가레: 자연적 삶을 사는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기 위한 매개로서 공기와 호흡이 수행하는 본질적 기능은 망각되어왔습니다.

  사실 이 매개 기능은 이미 식물 세계와 나 자신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서로 교감하고 있었습니다........공기는 우리를 살아 있는 관계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공기를 통해서 나는 우리 전통이 단절시킨 보편적 교환에 참여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보편적 공유에 참여했습니다.(43)

 

마더: 생명은 살아 있는 존재들 사이에 어떤 공간도 남겨두지 않는 분리와 대조됩니다. 그러므로 분리는 본질적으로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숨 쉬기는 최소한의 숨 쉴 공간이 보장되는 작은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과제는 우리가 식물과 우리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생명의 합주에 참여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문화를 가꾸는 것입니다.(205)

 

나는 고전적 의미의 일기 쓰기를 중단한 지 오래됐다. 내 삶의 어떤 부분, 특히 그날그날의 사유를 두세 군데 적는 것으로 갈음한다. 이렇게 적어 놓은 내 글을 다시 보는 일이 내 생활의 소중한 일부고 각별한 취미다. 이따금 내 글인데도 뜻 모를 단어가 나타나곤 한다. 더군다나 문장은 물론 글 전체가 통째로 속을 드러내지 않고 멀찌막이 서 있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알아차린다. “, 이 글은 나 혼자 쓴 게 아니구나!”

 

TINKER DABBLE DOODLE TRY에서 Srini Pillay가 한 말을 들어보자.

 

우리 뇌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 현실이다........우리 뇌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부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엮인 여러 개의 구슬에 가깝다. 뇌는 각각 실에 엮여 있는데다가 보편적 무의식이라는 좀 더 큰 사슬의 일부 일 수 있다........”

 

생물학적 현실에 따른다면 의식했든 못했든 내가 어떤 사유를 글로 옮길 때 같은 사유 속에 있던 누군가가 함께 작업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공동체적인 현안이라면 더 많은 동지(!)가 숙의와 집필에 동참했을 수 있다. 내가 내 글을 어려워하는 것은 집단 지성이 내 개인 지성보다 한 수 위이기 때문일 수 있다. 모든 경우에 자동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내가 써 놓고도 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이다.

 

식물과 인간은 공기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다. Srini Pillay 말대로 하자면 하나로 연결된다. 이리가레의 매개를 넘어 마더의 참여하는 존재. 공기는 식물과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고 관통하면서 생명의 기호를 생성해낸다. 호흡은 식물과 인간이 서로 먹고 먹이는 생명의 합주가 시작되는 운동이며 종료되는 사건이다. 공기의 보편적 공유에 참여함으로써 식물과 나누는 교감을 카이로스 찰나에 알아차리는 인간이라면 그가 바로 신이다. 호흡의 각성이 다만 수단이거나 소유여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식물이 없다면 인간 호흡은 성립하지 않으며 따라서 식물과 더불어 하지 않는 공기 각성은 절도다. 공기가 없다면 식물도 인간도 살 수 없으며 따라서 공기와 더불어 하지 않는 식물 각성은 강도다. 훔치고 빼앗아 쌓은 문명의 구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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