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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평점 :
마더: 성체론자들의 진짜 미스터리는 신의 신체와 인간신체의 식물적 구성에 놓여 있습니다. 발효된 밀을 가리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하거나 발효된 포도를 가리켜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하는 것은.......식물 세계에서 자신을 발견하거나 재발견하는 것입니다.(193쪽)
구교든 신교든 기독교가 자신의 경전인 성서 사상을 천박하게 이해해 비틀거나 뒤집어 놓은 경우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수 부활 이야기다. (본 서재 마이페이퍼 2017년 8월 29일자 글 <나를 만지지 마라>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같은 반역이 여기 또 하나 있다.
최후만찬에서 예수는 “발효된 밀을 가리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발효된 포도를 가리켜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기독교는 빵과 포도주가 성체화해 우리 생명에 전유된다고 선포하는 상징 또는 실재적 근거로 삼는다. 마이클 마더에 따르면 여기가 거짓말의 발원지다. 이것이 문제적 거짓말인 까닭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보다도 ‘선포’권을 사제집단이 전유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권한은 모든 기독교인에게 확대되었고, 급기야 세속화되어 전 백인성인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 특히 자본가에게 보급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돈을 포함한 재산으로서 사물, 인간 특히 유색인종, 아동, 여성, 각종 소수자, 장애인, 그리고 노동자를 포함한 동물, 식물을 폭력적으로 전유하는 역사가 제국주의 발흥과 더불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 우리는 그 참담한 묵시록적 풍경의 들머리를 지나가고 있다.
예수의 말은 본디 어디를 향하고 있었던가. 마더는 “식물 세계에서 자신을 발견하거나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식물이 성체화해 “신의 신체와 인간신체”에 전유된다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다. 신의 신체와 인간의 신체는 본디 “식물적‘으로’(인용자 붙임) 구성”되어 있다. 구성이란 현대적 어감을 풍기는 낱말을 쓰지 않고 그냥 예수처럼 ‘이 식물들이 나, 그리고 그러니까 너희의 살과 피다’라고 말한대서 과학적으로 뭐 잘못될 일 없다. 정작 중대한, 아니 기독교인에게 전복적인 진실은 이제부터다.
예수가 가리킨 빵과 포도주는 내가 일상의 구체적인 삶에서 인간과 하느님의 본 모습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생생하면서도 소미한 식물성 음식이다. 빵과 포도주는 내게 먹힘으로써, 아니 나를 먹임으로써 나를 구성하는 온갖 식물 생명을 대표해 나로 하여금 내 근원을 돌아보게 일깨운다. 내 밖에 있는 신 또는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성체화해 내 몸에 전유시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내게 말하고자 하는 바, “너 스스로 네 무한소의 근원으로 돌아가라. 그게 신의 길이다.”
밀과 포도는 흙과 물과 빛(불)과 공기로, 지수화풍은 원소로, 원소는 양자로, 양자는 공변양자장으로 귀결된다. 일체 거점의 소거다. 일자一者 대문자 생명의 삭제다. 유일 거대신의 소멸이다. 창조주의 퇴출이다. 소미심심小微沁心 무한신의 귀환이다. 무한소의 평등평화 네트워킹 하느님의 복귀다. 예수는 다시 한 번 무한소의 근원을 명토 박는다. “나를 만지지 마라.”
“만지는 순간 ‘거대’의 망령이 되살아나느니라.” 예수의 음성은 만억의 코로나19가 되어 인간의 식물성 신체에서 식물성 의식을 흔들어 깨운다. 분리, 차별, 소외, 억압, 수탈에서 모두 함께 구원하려면 190cm 떨어져라. 돈을 포함한 재산으로서 사물, 인간 특히 유색인종 아동 여성 소수자 장애인 노동자를 포함한 동물, 식물의 폭력적 전유에서 너나 더불어 해방하려면 190cm 떨어져라. 서로 자작나무가 되어라. 서로 강아지풀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