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초벌 작업이 끝난 뒤 다시 20일 동안 두벌 작업을 진행했다. 제목을 다시 고쳤다. 이야기들을 11개의 나선구조로 바꾸어 배치했다. 토씨 하나까지 바꾸는 세부작업을 한 번 더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처음 글과 그 제목은 <미안해서 못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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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볼 수 없을 듯합니다. 그는 순도 99.99%의 우울장애 전형이었습니다. 모든 우선순위가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모든 중심이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맨 뒤에서 주춤주춤 따라 걸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자신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담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무수히 반복했습니다. 어째서 미안하냐고 물으니, 그가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못나서요.”

 

그는 자신이 못나서 부모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처음에 가슴이 먹먹하다가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부아를 삭이면서 저 또한 절절한 심정으로, 뭐가 어떻게 못났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웅숭깊게 대답했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요.”

 

그의 팔목, 아니 팔에는 무려 20개에 가까운 칼자국이 있었습니다. 미안해서, 못나서, 그는 긋고 또 그었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나 유령인 채 잘난 사람들 언저리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치료 받는 것도 미안하고, 돈이 없는 것도 미안하고, 그냥 와서 치료 받으라고 간곡히 권하는 제게도 미안해서, 결국 그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딱 한 번 마주한 얼굴인데 잊히지 않습니다. 그가 아직도 건강을 되찾지 못 한 채 아프디아프게 살고 있다면, 여기에 제 책임도 없지 않다는 죄책감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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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렇게 바꾸었다. 제목은 <아침에 받은 것을 저녁에 돌려주다>다. 


*

 

다시없을 것이다. ㅁㄴ은 순도 99.99%의 우울장애 전형이다. 모든 우선순위가 타인에게 있다. 모든 중심이 타인에게 있다. 그는 언제나 맨 뒤에서 주춤주춤 따라 걷는다. 그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늘 자신을 떠나고 있다.

 

ㅁㄴ은 미안하다는 말을 무수히 반복한다. 어째서 미안하냐고 물으니, 서슴없이 대답한다.

 

못나서요.”

 

그는 자신이 못나서 부모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미안하다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절절하던지, 처음에 가슴이 먹먹하다가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온다. 부아를 삭이면서 ㅂㅇ 또한 절절한 심정으로, 뭐가 어떻게 못났는지 묻는다. 그가 웅숭깊게 대답한다.

 

태어난 것 자체가요.”

 

내 팔목, 아니 팔에는 무려 20개가 넘는 칼자국이 있다. 미안해서, 못나서, 나는 긋고 또 긋는다. 긋는 찰나 들이닥치는 날카로운 통증이 나를 살리고 또 죽인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나 유령인 채, 나는 잘난 사람들 언저리를 떠돌고 있다.

 

치료 받는 것도 미안하다. 돈이 없는 것도 미안하다. 그냥 와서 치료 받으라고 간곡히 권하는 ㅂㅇ선생님에게도 미안하다. 모두 내 못난 탓이다.

 

내가 오늘 들고 갔던 카드는 여동생의 카드다. 그 여동생은 내가 너무나 자랑스러워해서 수없이 꽃을 선물했던 여동생이다. 그 여동생에게서 아침에 받았던 그 카드를 나는 저녁에 돌려주었다. ㅂㅇ선생님을 다시 뵙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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