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테리 이글턴의 『유머란 무엇인가』 번역서 표지 하단에 이런 문장이 놓여 있다.


지금처럼 유머가 절실했던 시대는 없었다!



이것은 영문 원서의 문장과 전혀 무관하다.


IF TERRY EAGLETON DIDN’T EXIST, IT WOULD BE NECESSARY TO INVENT HIM.



SIMON CRITCHLEY의 말인데,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구사할 만한 적절한 유머다. 번역서의 문장은 번역자나 출판사가 우리사회의 상황을 고려해서 만들었는가?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지금은 왜 어떻게 그 어느 때보다 더 유머가 절실한 시대인가? 너무나 진지한 것 치고는 절실함이 다가오지 않는 이상한 선언문장이다.


절실함을 찾으려면 번역서 권미 <추천의 말> 끄트머리에 나오는 “언어공격과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이 시대”라는 표현을 그 단서로 삼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이 왜 하필 우리사회의 상황을 반영하는가 하는 데 있다. 그 표현 자체로는 답을 얻기 어렵다. 중립적·추상적 발언이어서 도리어 탈-상황을 초래한다. 문화적 식민지 상태에 있는 사회의 번역이 빠지는 거의 필연적인 함정이다. 마사 누스바움을 정색하고 읽는다.


왜 우스운지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왜 슬픈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비극적 곤경과 달리 농담에는 친근한 맥락이, 공유된 어떤 배경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유머를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정치적 감정』482-483)


언어공격과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절실한 유머가 요청하는 “친근한 맥락”과 “공유된 어떤 배경”은 무엇인가? 거꾸로 말하면 유머의 친근한 맥락과 공유된 배경을 구성하는 언어공격과 혐오발언의 구체적 실재는 무엇인가?


언어공격과 혐오발언이라는 언어 중심적 표현은 유머라는 주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언어 너머 사회적 행위·사건, 나아가 정치적 구조·체제에 가 닿아야 한다. 인문학너머 사회과학적 성찰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친근한 맥락과 공유된 배경을 역동적으로 핍진하게 파악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언어공격과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시대를 열고 구가하는 주체가 누군가?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매판수구 언론·정당·재벌·사법·종교·지식인 과두집단이다. 이 과두집단이 근현대사를 통해 무슨 짓을 해왔는지 소상하게 알지 못한다 해도 2014년 416 이후 2020년 415 직전까지 굵직한 기억만으로도 언어공격과 혐오발언이 왜 어떻게 누구를 향해 행해졌는지 알 수 있다.


힘세지만 찌질한 이 집단을 향해 던진 민중의 유머를 <415우스개> <415우스개-시즌2>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415우스개가 완성되려면 매판수구집단 다수파 구조를 온전히 종식시켜야 한다. <시사인>의 마지막 분석(시사인661호)은 그 변곡점 여부를 결정할 리트머스시험지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꼽고 있다. 이 뉴딜혁명이 약자를 위한 사회 재계약에 도달해 ‘리그 밖 사람들’의 역습을 막아야 성공한다고 본다.



<시사인>의 관점은 아무래도 성공한 루스벨트 뉴딜의 빛 아래 형성되었을 것이므로 그 나름의 한계를 지닌다. 한국사회가 지니는 특수성 때문에 내가 <시즌2>에서 기다렸던 분석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미흡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판수구 본진의 브레인인 조선일보프레임에 대한 큰 틀의 담론이 누락되어 있어서 <시사인>의 결론은 ‘아쉬운 동의’ 정도로 매겨둔다.


마사 누스바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한다.


모든 사회는 사람들의 염원을 좌절시키지 않도록 공적인 슬픔을 잘 다루어야 하며, 동정심의 대상을 일부에서 전체로 적절히 확장시켜야 한다.”(같은 책 409)


루스벨트 뉴딜을 그는 비극 축제에 위치시킨다. 대공황이라는 재난, 그러니까 “공적인 슬픔”을 다루는 탁월한 모델이라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문재인 뉴딜 또한 416에서 코로나19에 이르는 재난, 그러니까 공적인 슬픔을 다루는 문제다. 슬픔을 다룰 때 우스개가 전혀 필요 없어서라기보다 우르개만이 일으킬 수 있는 고유한 ‘정치적 감정’ 때문에 <415우스개-시즌3>의 말미 마사 누스바움에 기대어 기어이 다시 비대칭의 대칭 이야기를 모신다. 하이 바이, 마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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