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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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는 타인의 모욕적 관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스스로 보란 듯이 내보이면 그를 무장 해제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자기 비하 유머는 어쩌면 굴욕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서 그 굴욕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고가 있는 힘껏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낮추면, 인정사정없는 잔혹한 초자아의 질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모순에 이르는 수준의 통찰력과 투지를 발휘한다. 한 인간의 범속함을 초월하게 하는 힘은 그러한 범속함을 고백할 수 있는 솔직함에서 나온다.(101쪽)


더 아래로 떨어질 데가 없는 사람은 기이한 무적無敵성을 만끽한다.(102쪽)


여기 “자기비하 유머”라는 말은 대단히 우아한 형용모순이다. 자기비하는 질병이다. 유머는 치유다. 자기비하, 좀 더 단도직입으로 말해 자기부정이 증후군을 형성한 질병을 흔히 우울증이라 부른다. 우울증은 자신이 자기부정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이 병이다. 자기 부정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서 마침내 구사하면, 그러니까 우스개 삼으면 치유는 반환점에 도달한다.


반환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스개로 말미암아 우울증 앓는 사람은 스스로 무無성으로 들어가 “기이한 무적無敵성을 만끽한다.” 기이한 무적성을 만끽할 때 그는 웃음의 형식으로 통곡을 택한다. 통곡은 극단적 자기부정 상태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서 흔쾌히 구사하는 자기축제의 팡파르이자 극단적 자기부정에 빠졌던 상태와 이별하는 자아장례의 레퀴엠이다. 그 통곡이 끝나면 이제 돌아가야 한다. 어디로 돌아가는가?


굴욕을 극복”하고 “범속함을 초월”하는 것은 영광과 성결에 머무르기 위함이 아니다. 극단 자기부정과 극단 자기긍정을 떠나 무애無㝵 꽃을 피우기 위해서다. 무애 꽃은 불순물끼리 화학작용을 일으켜 빚는 융화다. 상호작용하는 불순물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경계시공이다. 경계시공에서 그는 부정·긍정 너머 자기인정의 삶을 새로이 시작한다. 자기인정은 눈물겨운 여정이다. 눈물겨운 여정에서 우스개가 어찌 에너지로 작동하겠나. 에너지는 우르개에서 나온다. 우르개가 부르는 울음의 형식은 빈소嚬笑다. 빈소는 곱절로 “기이한 무적無敵성”을 부르는 영검 무쌍 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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