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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평점 :
브레히트의 연극에서는 감동 금지 덕분에 그 어떤 특별한 관점이라도 상대화할 수 있고, 전체 사건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갈등과 모순을 놓치지 않은 상태에서 거리를 두고 내린 판단이나 평가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주장의 적이 된다.·······하나의 관점은 상반되는 또 하나의 관점과 경합하게 되고, 모순이 탄로 나며, 실제와 불화하는 다양한 범주의 가능성이 넌지시 드러난다.·······이 같은 종류의 장치에는 변증법적 특징이 있다. 실제로 브레히트는 변증법적 사고를 이해하는 사람치고 유머 감각 없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브레히트에게·······역사란 변화무쌍하며 정해진 답이 없다는 주장은 본질상 희극적 뭔가를 품은 것이다. 희극적 전복의 궁극 기능은 정치혁명이다. 어제 페인트 공이었던 히틀러가 오늘 수상이 되지만, 내일은 벙커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일련의 과정을 암시한다. 희극의 반대말은 운명이다.(90-91쪽)
“희극과 운명론은 서로 통한다.” 불과 다섯 쪽 앞에서 테리 이글턴이 한 말이다. 물론 “희극의 반대말은 운명이다.”란 말을 브레히트의 것으로 보면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르다,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럴까?
테리 이글턴이 말한 운명론의 범주는 세계 또는 우주다. 브레히트가 말한 반-운명(론)의 범주는 역사다. 익명의 소시민에게 두 범주는 별반 차이가 없다. 이 경우, 이글턴과 브레히트는 양립 불가다. “정치혁명”을 논할 정도의 인물에게 두 범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 경우, 이글턴과 브레히트 간 상충은 없다.
“하나의 관점은 상반되는 또 하나의 관점과 경합하게 되고, 모순이 탄로 나며, 실제와 불화하는 다양한 범주의 가능성이 넌지시 드러난다.” 이 “변증법적 특징”을 품은 희극은 “정치혁명”을 지향한다. 이 지향은 운명을 거스른다. 운명을 거슬러 정치혁명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절대적이고 완벽한 주장”으로 똬리를 틀면 어떤가. 변증법이 아니다. 진정한 변증법에 절대적이고 완벽한 주장 따윈 없다. 나든 남이든 언제든 어디서든 그 주장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변증법이다. 이때 변증법은 우스개의 다른 이름이다. 우스개는 세계 또는 우주 사건의 한 파동으로 일어났다 스러진다. 이때 우스개는 운명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