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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평점 :
사악한 세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널리 공유되기 원하는 가치의 붕괴를 결과하기 십상이다. 사실성의 무시는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다.·······역사가 상황을 오판하고 일을 그르친 예가 허다하기에 이런 역사의 결함을 바로잡으려면 희극이 필요하다.(90쪽)
“사악한 세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사악한 세상을 바꾸려는 의로운 뜻에서 만든 객관적·비판적 표현이 분명하다. “널리 공유되기 원하는 가치”가 달리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어째서 그 사실적 묘사는 도리어 당위로 삼은 “가치의 붕괴를 결과하기 십상”인가?
여기 사실적이란 말은 실은 사실‘주의’적이란 말이다. 사실주의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지만 엄밀하게 보면 그 현실은 근본주의로 걸러낸 ‘순수’ 현실이다. 사악한 세상에 대해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세상의 사악을 절대사악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실재는 그렇지 않다. 100% 사악한 세상은 없다. 사실적 묘사가 비현실적 묘사라는 전복은 이래서 일어난다.
비현실적 사실주의는 현실에서 물질적 전선을 형성하지 못한다. 현실의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없다. 현실의 사람 밖에서 저들은 알량한 게토를 만들어 아라한의 삶을 즐긴다. 아라한은 입으로만 공동체를 사랑한다. 입공동체는 점점 더 현실의 사람에서 멀어져간다.
현실의 사람은 근본주의·순혈주의의 사실적 묘사, 그 가차 없는 비판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진리를 안다. “상황을 오판하고 일을 그르친” 저 똑똑한 사실주의의 “결함을 바로잡으려면 희극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스스로 실천한다. 사실적 묘사를 버리고 예술적 묘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