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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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함과 고통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세계는 그런 사실을 온전히 앎으로써 긍정된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낯섦을 마주할 때 오는 심리적 불편함과 불쾌함에서 우리를 구원한다.·······세계를 소상히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이런 확고한 안심감은 여러 경험 가운데 본질적으로 가장 희극적이다. 웃긴다는 의미에서 희극적이라 한 게 아님은 물론이다. 유머는 그로부터 길러지는 평정심에서 흘러나올 수 있다.·······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도처의 불행과 차분하게 거리를 둔 채 파국을 맞고 피하는 것이 자연 섭리라는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현실을 어떤 장엄한 예술품처럼 보는 것이다.(86-87쪽)


[앎-안심감·평정심-현실을·······예술품처럼 보는-거리를 둔-희극] 키워드를 원형대로 열거한 것이다. 조금 정리하면, [인지·인용認容-안심감·평정심-심미적 자세-소격효과-우스개]가 된다. 이 연결 과정에는 의문 하나가 존재한다. 낯섦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앎인데, 그 앎이 다시 소격효과, 그러니까 낯설게 하기를 유발한다. 대체 무슨 일인가?


여기 앎은 단순한 알아차림이 아니다. 거기에는 받아들임이 포함된다. 인지·인용이라고 조금 바꾼 까닭이 여기 있다. 인지는 본질적이든 역사적이든 이 세계에 “잔인함과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인용은 잔인함과 고통이 존재하는 이 세계의 어떤 궁극 지점에 우리 실천은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받아들임은 평정심을 전제로 한 실천의 무자비한 축소다. 현실을 실천의 스케일 밖으로 밀어내는, 그러니까 “장엄한 예술품처럼” 보는 “심미적 자세”(86쪽)에서 나온다. 심미적 자세가 거두는 소격효과다. 소격효과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우스개다. 우스개의 사람은 예술품으로 여기는 세상 속에서 예술적 인생을 살아간다. 밥이 나오느냐는 별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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