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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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의·······웃음은 억압의 실패다. 그래도 우리는 즐겁다. 다름 아닌 억압을 위반하는 바로 그런 행위를 통해서 억압의 힘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완전히 고결한 인간은 완전히 악랄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웃지 않을 것이다. 전자는 애초에 불경한 감정을 품지 않을 것이고, 후자는 금지의 힘을 인식하지 못할 터이므로 그것을 위반해 넘는 데서 오는 특별한 전율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농담은 억압행위와 억압당하는 본능을 모두 아우르는 ‘타협 형성compromise formations’이다.(33-34쪽)


이 문단을 읽을 때, 그냥 쓰윽 넘어갈 수 없는 두 단어가 있다. 첫 문장 바로 뒤에 오는 “그래도”와 마지막 문장 끄트머리의 “타협”이다.


그래도”는 본디 억압의 실패가 즐겁지 않다는 논지를 따라 쓰는 역접 또는 양보 의미의 접속사다. 억압의 실패가 즐거우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억압을 위반해야 한다. 다음, 위반함으로써 그 억압의 힘이 인식되어야 한다. 위반과 억압 사이에는 팽팽한 비대칭의 대칭 구도가 사건적으로 엄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반이 억압을 찰나적인 해체로 몰고 가지만 “결코 그것에 의존하기를 멈추는 법이 없다.”(20쪽)는 테리 이글턴의 통찰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위반과 인식, 해체와 의존은 상호경계사건으로 무한히 만나고 헤어진다. 이것이 바로 원효의 화쟁에서 나타나는 입쟁-파쟁의 나선순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협”은 함량 미달의 언어다. 모순을 아우르는 것은 타협이 아니다. 모든 실재는 공변양자장 안에 있다. 100% 고결한 인간이나 100% 악랄한 인간은 실재가 아니다. 역설 속에서 공존하는 것은 존재론적·물리학적 진리사건이다. 공시적 경계와 통시적 맥락이 형성되는 각각의 특이점에서 각각의 상태함수에 의거 각각의 우스개가 된다.


재미 짓는 우스개의 특이점과 의미 짓는 우르개의 특이점이 별개의 것이 아닐 수도 있음 또한 우연적 필연이다. 웃음이 그대로 울음의 한 방식이고 울음이 그대로 웃음의 한 방식일 때, 우스개와 우르개는 서로의 목숨을 거두어 서로의 결실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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