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웃음의 여러 형태들 가운데 대다수는 유머와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무엇보다 희열을 느끼는 경우 상황이 웃기다고 여길 가능성이 좀 더 높기는 하지만, 웃음은 재미보다는 오히려 고양된 기분을 나타내는 징표일 수 있다.(17쪽)


테리 이글턴은 외양으로 20개, 내용으로 23개의 다른 웃음을 예시한다. 톺아보면 더 많은 수가 나올 테지만, 그 이상은 무의미하다 할 만큼 그의 추적은 세밀하다. 얼마나 다양한 웃음이 존재하든 문제는 그 대다수가 “유머와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관심사는 웃음 자체가 아니라 유머다. 유머는 “고양된 기분을 나타내는 징표”인 웃음의 제조 기술이 아니다. 유머는 “재미”의 세계를 열어가는 파동의 진원이다. 재미는 의미와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인간의 삶을 추동하는 한 축이다.


의미에 대한 맹목적인 물질성의 과잉은 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유머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음미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더불어 우리가 이런 식의 모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독려하기도 한다.(18쪽)


의미는 인간이 정신적 존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달시킨 상상력의 소산으로서 열역학제이법칙이나 유한성에 저항하는 일종의 적응양식이다. 의미는 “논리정연하고 일관성 있는”(20쪽) 형식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므로 과잉 물질성으로 나아가는 맹목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강고한 물질 의미를 “해체”(20쪽) 또는 “붕괴”(20쪽) 또는 “분열”(20쪽)시킴으로써 엄숙한 맹목세계를 “음미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이런 식의 모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독려”하는 것이 바로 재미가 의미와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인간의 삶을 추동하는 원리다.


의미는 본디 물질의 상태함수로 표현될 것이 아니다. 정신을 전유한 자아가 스스로 권력화하면서 의미에 물질성을 입혔을 뿐이다. 물질 의미의 수직적 특별함을 단박에 깨뜨려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유머, 그 유머가 일으키는 수평적 일치의 재미, 그 재미의 몸 발현인 웃음, 그 웃음으로 번져가는 허허로운 연대, 이런 사건의 겹을 통과하면서 진리는 그 한쪽 문을 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