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배우 김여진의 트워터를 보고 나는 홀연히 제주도 강정마을로 향했다. 침과 한약을 싸들고 가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펼치는 주민과 활동가를 치료했다. 내가 침 치료한 곳은 마을의례회관과 구럼비 밖 모래언덕이었다. ‘의사가 막걸리 마시면서 침 놓으면 침이 고치는 거냐 술이 고치는 거냐’던 주민들 우스개가 낭자했지.^^



그때만 해도 구럼비가 온전했던 터라 나는 그 위를 맨발로 돌아다니며 경이와 맞닿을 수 있었다. 붉은발말똥게도 보았다. 그 구럼비도 그 붉은발말똥게도 이제는 없다. 그 강정과 그 주민과 그 활동가에게서 나 또한 없다. 그 기억을 더듬어 오늘과 마주 세우려 2020년의 내가 다시 강정마을로 간다.



포구를 향해 난 길을 따라가다 살풍경한 전신주에 매달린 도로 표지판을 본다. 말질로 213번 길. 행정토건이 일으킨 이름이다. 내가 그곳을 주목한 이유는 그때 구럼비로 가는 들길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발맘발맘 따라 가본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연인처럼 그때 풍경이 와락 달려와 품에 안긴다. 물론 거기까지다. 구럼비는 살해되었고 사람 마음 한 조각 어찌어찌 살아서 전신주 신세를 지고 있다. 『해군 반대』. 앞에다 ‘미’자를 더해야겠지.





본디 이 길 이름이 할망물로였던가·······그렇기도 하겠다. 왜 마을 이름이 강정江汀이겠나. 그러나 그 가로막힌 길 너머를 보라. 범섬을 밀어내고 군함이 들어앉았다. 협잡을 국가안보의 계율로 삼는 자들이 지은 공식 이름은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란다. 제주만 빼고 모두 거짓말이다. 사제 문정현이 여적 거기 있는 까닭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강정평화상단(http://savejeju.net/)을 찾는다. 해마다 명절이면 인생은사 두 분께 인사 올리는 식품을 의뢰하는 곳이다. 감귤류 농산물, 옥돔 등 수산물, 흑돼지 등 축산물, 소시지 등 가공식품 판매 수익금 전액을 강정 생명평화운동에 쓰는 협동조합이다. 일요일인데도 분주하다. 방해가 될까봐 인사만 간단히 하고 얼른 돌아선다. 이들의 삶과 나의 삶은 대체 얼마만큼 이어져 있을까. 내 삶에 송구함이 또 한 번 번지는 순간이다. 



강정을 떠난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택시 한 대가 다가와 경적을 울린다. 서귀포 갈 거면 타라고 한다. 이런 일도 있구나 싶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기사가 수염 기른 내 외모를 보고 사제 문정현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런 일 하는 사람인가 묻는다. 강정마을 문제를 전국적 이슈로 만든 장본인 가운데 하나라 하니 놀란다. 그의 놀라움이 무색하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익명의 존재다. 공동체 밖 사람이다. 회색으로 더욱 나지막이 내려앉은 강정 하늘 끝자락에서 스스로 묻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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