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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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 전문가를 통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조사예요. 하지만 내가 자꾸 전문가들을 비판하게 되는 게 뭐냐면, 전문가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테두리 안에 세월호 참사를 끌어와서 그 테두리 안에서만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자기가 설명을 못하잖아요? 그러면 그걸 부정하는 거야. 그 사람들 머릿속에는 세월호 참사의 모습은 이런 것이라는 상이 이미 정해진 거죠.(362쪽-예은 아빠 유경근)


식민지와 군부 통치를 찬양했던 시인 서정주가 생전에 변명이랍시고 한 말이 “정치 백치”였다. 내게는 이 말이 범죄자가 출구전략으로 써먹는 “심신 미약”과 같은 것으로 들린다. 정치에 백치는 있을 수 없다. 불의한 통치에 자발적·능동적으로 부역하는 것이 백치인가. 어찌 서정주뿐이랴. 수많은 예술가, 학자, 기술인들이 전문가 알리바이에 기대어 근현대사의 질곡을 뻔뻔하게 웃으며 통과했다. 지금도 그렇다. 기사 조훈현이 대표적인 예다.


416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 전문가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가령 백남기 선생의 사인을 규명할 때 물대포가 직접 원인이 아니라고 진단한 양의사 백선하를 전문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가 다른가. 왜 죽였는지를 묻는데 배 타령하는 게 전문가인가. 정말 전문가는 박근혜 패거리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이 사건을 일으키고 조작했는지,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했는지를 밝히는 사람 아닐까. 물적 증거를 지닌 사실의 조합 너머 인간의 의도와 행위까지 결합된 전체 서사로서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 아닐까. 전문가 역설이다.


전문가 아닌 전문가가 반드시 전체를 지휘·감독해야 한다. 416을 정치적 범죄로 보는 관점 없이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 아닌 전문가는 정치적 범죄의 피해 당사자다. 피해자의 눈으로 보지 않는 객관성과 중립성은 속임수다. 본디부터 없었다며 청맹과니 전문가가 찾지 않는 증거, 그러니까 박근혜 패거리가 인멸시킨 증거를 구성적으로 상상하고 발견하는 눈을 지닌 유가족이야말로 416진실 규명의 수승한 전문가다.


현실에서는 이런 이치가 통하지 않는다. 촛불시민도 촛불정부도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다. 살아 있는 권력은 언제나 그렇듯 매판 본진이다. 매판 본진이 허락하지 않는 어떤 일도 이 땅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냉철하게 따지면 특조위가 아무리 애쓰더라도, 검찰특수단은 일부러 그렇게 할 테여서, 핵심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패배의 불길한 예감을 안고서도 유경근이 싸우는 까닭은 뭔가. 처절한 패배마저 보이지 않는 416진실을 깊은 실재로 살아 있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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