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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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진상규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이 따로 있는 줄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진상규명은 없어요.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은 것뿐이죠.·······원하는 진실과 진실을 원하는 거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우리가 박근혜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참사 당시에 뭘 했는지 알려주면 돼.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명령체계가 있었고 어떤 지시가 내려왔고 어떤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는지.·······그런데 마치 우리가 대통령의 사생활에 관심 있는 것처럼 호도해버리니까·······설명 없이 막기만 하니까 폭발하는 거죠. 진실을 가리니까 여태까지 싸워 온 거죠.(361~362쪽- 준형 아빠 장훈)


음모를 꾸미는 자는 ‘음모 따윈 없다’는 똑똑한 개소리를 유포해서 안심하고 새로운 음모를 꾸민다. 진실을 은폐한 자는 ‘원하는 진실이 따로 있느냐’고 상대에게 뒤집어씌워서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진실로 확정짓는다. 박근혜 패거리와 매판본진이 원해서 확정한 진실은 ‘애들이 배 타고 놀러가다 우연히 사고를 당했다. 철없어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국가는 책임자 처벌하고 피해자 보상함으로써 적정하게 수습했다.’다.


음모론이라는 혐의를 자초할 일 없으니 일단 합리적 의심부터 해보자. 1. 고 고해인 외 249명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놀러가던 길이었는가? 2.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우연한 사고였는가? 3. 아이들은 철없어서 빠져나오자 못하고 죽었는가? 4. 국가가 처벌한 책임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5. 피해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6. 왜 배상이 아니고 보상인가?


1. ‘한 사람을 가장 간단하게 죽이는 방법은 모멸을 가하는 것이다.’ 박근혜 패거리와 매판본진이 416을 악랄하게 처리하는 방식의 기초는 바로 사건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대중과 격리하는 최선의 전략이다. 학생 하면 공부라는 생각부터 하는 대중의 통속한 정서에 노라리라는 개념을 주입하면 순식간에 절연이 일어난다. 노랑리본 달고 있는 나를 보고 지하철 안에서 70대 남성이 경상도 사투리로 투덜거린 말도 “놀러가다 죽은 긴데.”였다. 수학여행은 수업의 한 양태다. 나는 중학교 때 가난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학여행 가지 않으면 결석 처리된다. 매일 학교 나와 자습한 뒤 청소하고 귀가해라.” 담임선생님이 악의적으로 나를 골탕 먹인 것인가.


2. ‘사고’인가 ‘사건’인가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사고면 과실이 맞고 사건이면 고의가 맞다. 사고면 침몰이 맞고 사건이면 격침이 맞다. 사고면 사망이 맞고 사건이면 살해가맞다. 사고라면서 왜 철저하게 구조를 가로막았는가. 사고라면서 왜 집요하게 300명이 넘었는지 확인했는가. 사고라면서 왜 악착같이 증거를 인멸했는가.


3. 고등학생이면 철없을 수 있다. 그러나 목숨을 잃는 상황에다 철없음을 들이미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판단이 아니다. 스스로 내린 판단인지 상부 지시인지 알지 못하나 해경 박상욱은 그 발언에 살해 고의가 담겨 있다는 역설을 깨닫지 못했다. 한 시간 동안 12번에 걸쳐 단원고 학생만을 콕 집어 ‘가만있으라.’ 방송한 의도와 ‘철없어 죽었다.’ 말한 의도가 어떻게 다른가.


4. 팬티 바람으로 도망갔던 선장 따위를 감옥에 넣은 것이 책임자 처벌이라 한다면 구조를 위해 통영함 출동 지시한 해군참모총장 옷을 벗긴 것은 무엇인가. 박근혜가 파면되고 감옥 갔으니 된 것인가. 박근혜 파면 사유에 416은 없다. 박근혜는 416으로 재판 받은 적도 없고 단죄된 적도 없다. 단원고 아이들 250명을 포함 304명을 한꺼번에 살해한 제노사이드 급 범죄에 어떻게 가해자도 처벌도 없을 수 있는가. 박근혜는 그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전방위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이 어떻게 무관한가. 인신공양은 다만 루머일 뿐인가. 잠수함 이야기는 뭐며 어뢰 공격 이야기는 뭔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진실을 숨기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지 않은가.


5.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가족도 동일한 피해자다. <45. 네가 무슨 피해자냐>에서 보았듯 아이들의 시신을 일일이 확인하는 데 동원되었던 단원고 교생들도 피해자다. 직접적인, 법적인 범위를 벗어나 세심히 살피면 다양한 결의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한다. 416을 겪으면서 공황장애나 우울증이 도져서 나를 찾아온 분들도 피해자다. 416 직후 내원 환자수가 급감한 것은 어른(특히 엄마)들이 지니는 일종의 죄책감, 미안함 때문인데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었던 그들 또한 피해자다. 근 2년 동안 거의 매일, 이후로도 자주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던 나도 일종의 피해자다. 이렇게 따지면 이 범죄는 박근혜 패거리와 매판본진을 제외한 사회 전체에 피해를 끼친 셈이다. 국가가 이를 어찌 안단 말인가.


6. 박근혜 패거리와 매판본진이 가장 악랄하게 써먹은 분할통치술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보상금이었다. 보상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박근혜 패거리에게 책임 없음을 천명하기 위해서임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언론에서 크게 떠들게 만들어 보상금 지급으로 수습 종결 분위기를 조장했다. 가장 저열한 협잡질은 보험금, 회사 배상금, 시민의 성금을 포함한 돈을 지급하면서 마치 정부가 전액을 준 것인 양 속여서 일부 꼴통들로 하여금 세금도둑으로 몰아버리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게다가 보상금을 받은 가족과 받지 않은 가족을 이간하는 짓까지 서슴없이 저질렀다. 이런 패악은 대체 어디서 유래했는가.


매판지배층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전가의 보도로 써먹은 것은 바로 투사심리정치학이다. 나라 말아먹는 자신의 정체를 상대방에게 덮어씌우는 프레임이다. 416가족은 이 투사심리정치학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고 견딘다. 이 견딤이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통합하는 힘이다. 416공동체의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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