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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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고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기준이 바뀌었어요. 내 곁에 없으면 안 될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 거예요. 가족의 재탄생이에요.(282쪽-이지민 엄마 유점림)


스마트폰이 해킹당해 저장된 연락처 500여개가 날아 가버린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은 아끼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내 안타까움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따라 나는 표현을 바꾸었다. ‘주고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내 연락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먼저 연락해오면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다시 저장해두었다. 칠팔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아끼며 가까이 있다고 여겨왔던 제자·후배·벗 중 아직도 연락을 해오지 않는 경우가 여럿 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애당초 그들은 나와 소통하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아끼며 가까이 있다’고 여긴 것은 내 일방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를테면 익명적 존재였던 셈이다. 관계의 정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부자연스러운 깨달음 하나가 아프게 일어났다. “그들이 내게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가장 소중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 “곁에 없으면 안 될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그 뒤 지난 날 ‘감히’ 할 수 없었던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연락하지 않아보는 것이다. 영업적 거래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이런 실험은 특히 자기부정증후군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 매우 요긴하다. 자기 자신이 익명화된 사실을 모른 채 일방적인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습성에 깊이 침륜될 때 이를 일러 우울증이라 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울증이란 자신의 진정성 때문에 타인에게 격리·수탈·살해당하면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심신상태다. 이 병리에서 벗어나려고 오랜 습성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스스로 균열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 외부에서 가해지는 비상한 충격을 받고서야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회집단 또는 계층도 같은 곡절을 겪는다. 416이 그 전형이다. 416아이들, 그 가족, 애통을 함께하는 시민은 모두 사회적우울증 상태였다. “이 일을 겪고” 나서야 “재탄생”이 진행되고 있다.


재탄생은 뼈아픈 각성에서 시작된다. 뼈아픈 각성은 죽음과 그에 버금가는 상실 뒤에 찾아온다. 인간 영혼 또한 죽임당한 자의 목숨을 “먹고” 산다. 우리 삶의 요체가 제의인 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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