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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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시어머니가 보수적인 분이었거든요. 바깥 활동을 많이 하셔서 트인 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좀 닫힌 문을 갖고 계셨어요. 그런데 이 일을 통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고, 남은 인생은 예은이 덕분에 이전보다 나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예은이한테 고맙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고요.(269쪽-유예은 엄마 박은희)


한의원 근처에 십년 가까이 드나드는 백반집이 있다. 주인 내외하고 친구되어 심심찮게 함께 소주잔을 기울인다. 보통 나누는 대화는 미셀러니 수준인데 박근혜 탄핵 전후 급격히 바뀌었다. 정치 얘기가 시작됐다.


최순실-박근혜 협잡의 실체가 시시각각 밝혀지면서 얘기는 의당 그 내용으로 채워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탄식을 넘어 어떤 자각을 향해 대화가 흘러갔다. 이 지점부터 부부 사이에 미묘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아차렸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정권이 바뀌고 그에 따른 매판 본진의 프레임 조정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견해는 확연히 벌어졌다. 남편은 잠시 흔들리다 조선일보 독자였던 본디 성향으로 회귀했다. 똑같이 조선일보 독자였던 아내는 완전히 돌아섰다. 

이 사실을 접하는 순간, 나는 돋아 오르는 질문, 아니 답을 확인했다. 진실, 또는 진리를 직면할 때 여성과 남성 간 차이가 있을까, 그래 있다. 오랜 상담 경험에 터해 판단하건대 이 부부의 서로 다른 태도는 분명히 젠더 차원이다. 그냥 개인차가 아니다. 

정치문화 패러다임 전체를 톺아보며 곰곰 생각한다. 세계 정치판 전체를 여성 주도의 네트워킹으로 만들어야 인류가 멸절을 면할 수 있는 것 아닌지. 백반집 여주인이 소주 한 잔 하자며 대구탕을 끓이기 시작한다. 허, 아무래도 좀 달리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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