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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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 엄마하고 둘이서는 별로 울어본 적이 없어요.·······둘이 앉아서 울면 힘만 더 빠지죠.(241쪽-영석 아빠 오병환)


우리는 이렇게 들어왔다. “슬픔은 나누면 반절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곱절이 된다.” 영석 아빠 오병환의 말은 반대다. 그런가. 자식을 잃은 부부는 슬픔을 서로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덜어내어 주려 해도 피차 빈 공간이 없다. 그 속을 너무 잘 알기에 서로 덜어내지 못한다. 마주 앉으면 힘이 더 빠진다.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이는 남남일 때다.


부부나 가족 사이에 치유상담이 일어나기 힘든 까닭도 본질적으로 이와 같다. 마음병 앓는 사람들이 본격 치유상담을 받지 못하고 여러 경로로 헤매는 것은 가족·친지 등 연고를 따라 유사상담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아픈 사람들이 얻는 것은 대부분 긍정의 힘, 정신력 운운하는 사이비 결과물이다. 하고 싶은, 해야 할 말을 결결이 하지 못한 채, 매끈한 위로와 훈계를 듣고 물러나 어정쩡하게 웃으며 시나브로 죽어가는 병인의 모습 모습은 이미 익숙한 풍경 아닌가.


남이 기본적으로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조건에 있다는 말과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난다는 말은 다르다. 현실에서 유사상담이 횡행하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훈련받은 전문 상담자조차 대부분 사이비 처방을 던진다. 남의 속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한 결과다. 화학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무 같아서나 너무 달라서나 매한가지다. 이때 ‘같고 다른’ 경계에 소미한 틈 하나를 내는 일로 천지가 갈라진다.


한 어머니가 20대 초반 딸을 어렵사리 데리고 찾아왔다. 어떤 의욕도 어떤 움직임도 일으킬 기색을 보이지 않아 속수무책이라 했다. 어머니한테는 그래도, 아니 그러니까 ‘에너지’를 동원하지 말고 ‘소식’만으로 조금씩 다가가도록 조언했다. 딸에게는 의학적 언급은 일절 하지 않고 현재 겪는(다는) 어려움에 있는 그대로 맞장구만 쳐주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기별은 오지 않았다. 나는 고요히 묵상한 뒤 평범한 글 하나를 써 보냈다.


“안녕! 어찌 지내니? 여전히 힘든가보구나. 힘들 때 누가 힘내라 하면 확 짜증나지. 그런 말은 하지 않을게. 누군가 선뜻 도와주겠다고 해도 확 빈정상하지. 그런 말도 하지 않을게. 걍, 지푸라기 하나 잡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쌤을 의사도 멘토도 아닌 그저 지푸라기라고 여기고 가볍게 함 잡아봐. 누가 알겠니, 뭔 일 날지?^^”


조금 뒤, 반가운 답장이 날아들었다. 자식 잃은 부부는 이런 교신이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침묵의 지푸라기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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