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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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친정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제가 간병을 해야 했어요. 엄마가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싶으니까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다리에 금이 갔다 그러더라고··· 애 아빠가 시댁 가자고 하는데 막 꼭지가 도는 거예요. 저희 부부가 열 살 차이거든요. 남편은 제가 안 따라주면 막 짜증내는 스타일이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냥 끌려가야 하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퇴원하시고는 계속 술만 드시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돌아가셨어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댁 집을 수리하는 동안 시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어요. 그런데 시어머니 수발을 못 들겠더라고. 나는 광화문에 가야 하는데, 애 아빠는 못 가게 하죠. 미쳐 죽을 거 같더라고··· (227~228쪽-김주아 엄마 정유은)


누구랄 것도 없이 정신 줄 놓지 않은 사람이라면 416 이전과 이후는 다른 사회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다만 안전과 책임이라는 좁은 문제의식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건 직후 국가권력의 최상층부터 사회 모든 분야 기득권층, 그러니까 매판독재분단세력이 보여준 행태는 416이 저들이 저지른 수탈의 결정판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반증해주었다. 요컨대 416은 우리사회 시스템 전반을 전복해야 한다는 준엄한 요구다.


416유족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가부장제 살풍경이 분노를 자아낸다. 똑같이 자식을 잃었는데 떠안아야 하는 삶의 고단함은 왜 엄마에게 더 가혹한가. 왜 아내는 남편에게 “그냥 끌려가야 하는”가. 이 살풍경은 김주아 엄마 정유은에게 국한된 것인가. 생각을 펼쳐갈수록 가슴은 답답해지고 슬픔이 밀려든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들어섰을 뿐, 416가족이 본디부터 대한민국 여느 가족보다 더 뛰어난 윤리성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김주아 엄마 정유은이 겪는 일들이 일어나는 가정을 이루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가부장 논리가 내재화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죽음이 이것을 깨닫고 깨치는 죽비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강자가 약자를 억압·수탈·살해하는 모든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가부장제를 포함하여 전쟁, 상속자본주의, 아동학대, 인종·지역차별, 성소수자차별, 자연파괴, 일극구조종교 들이 전방위·전천후 해방운동을 기다리고 있다. 416운동은 이 놀라운 물결의 중심이며 발원지다. 섬세하고도 치열한 통찰과 실천의 지성소다.


해방운동은 일단 이렇게 구체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일상에서 시작한다. “참사 나고 나서 시댁을 한 번도 안 갔어요. 제가 맏며느리인데. 시어머니는 아직 모르시는데 제가 시누이, 동서들, 재강이 아빠한테 선언했어요. 나는 앞으로 제사는 안 지내겠다.·······그러고 나서 이제 아무도 저한테 제사에 대한 얘기는 안 해요. 재강이 아빠도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230쪽-허재강 엄마 양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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