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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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신념이 깃든 장소도 있고, 아니면 말 그대로 싸워야 하는 장소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손상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어떤 부모님들에게는 그런 곳이 동거차도고, 팽목이고, 광화문이었을 텐데.......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하는데 싸움의 중간 중간마다 생각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기준점이 됐던 장소들이 사라져가고 있어요.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고, 잊히길 원하는 사람들이 바란 게 이런 것이겠구나 싶고. 겁이 나요.(91쪽-시찬 아빠 박요섭)


내 고향 마을은 큰 지형의 바탕이 된 산줄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오대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변화다. 월정사 가는 포장도로·교량 건설 때문에 특히 내가 태어나 자란 집 부근 풍경은 옛 자취를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상전벽해를 견디는 기억을 기리면서 이따금씩 고향을 찾는다. 10년 전쯤이었던가. 옛집자리에 다소 살풍경스런 집 한 채가 앉았기에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다가와 빤히 쳐다보더니 물었다. “왜 봐요?” 나는 대답했다. “옛날 저 자리에 우리 집이 있었거든.” 아이가 모를 일이라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우리 집인데.......”


물론이다. 그 아이의 집이다. 복숭아나무·자두나무·사과나무·심배나무로 울을 삼고, 동쪽으로는 옥수수밭·감자밭과 잣나무 그득한 산 사이에 6번 국도를 내어주고, 서쪽으로는 지금 청소년수련원이 자리한 넓은 숲을 도닥이고, 남쪽으로는 진부를 향해 오대산 너른 오지랖을 열어주고, 북쪽으로는 월정사 너머 아득한 비로봉을 이고 있던 내 옛집은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은 기억뿐이다. 기억만이 내 삶과 성찰의 “기준점”으로 점멸한다.


아들의 목숨과 자신의 삶을 앗아간 사악한 정권을 상대로 아버지가 싸우다가 “싸움의 중간 중간마다 생각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기준점이 됐던 장소들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낄 때 그 심사가 오죽할까. 심지어 “잊히길 원하는 사람들이 바란 게 이런 것이겠구나” 알아차릴 때 얼마나 송연할까. 이 장소가 사라지듯 싸움도 는적는적해진다면 아들에게 얼마나 미안할까.


가족이 마련했던 광화문 세월호 공간 대신 서울시가 세운 기억 공간 앞에 설 때마다 나는 걱정에 잠긴다. 천막보다 더 ‘가건물’ 같은 이 목조 공간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시장만 바뀌면 없어지지 않을까. 지척에 똬리 튼 박근혜 패거리 보면 더욱 참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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