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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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 치료 받아야 하는구나.’

  세월이 가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악화되더라고. 그 동안은 피하고 살았던 거야.·······상담 받으러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공황장애, 불안장애라면서 꽤 진행됐대. 참사 후에 억울하고 분해서 싸우고 돌아다닐 때는 내가 우울한지 어떤지 신경을 못 썼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 마음이 점점 가라앉더라. 옛날에도 아프긴 했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뭔가 바뀔 것도 같으니까 한꺼번에 밀려오는 거지.

  약 먹은 지 7개월 정도 됐어.·······

  난 이 약들이 나쁘지 않더라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어.(69~71쪽-최윤민 엄마 박혜영)


최윤민 엄마 박혜영의 소박하고 솔직한 이 증언은 국가란 무엇인가를 정색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가 도리어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병들게 하고 싸우게 하고 약 먹어야 잠들 수 있게 하는 현실이 오롯이 담긴 증언 앞에서 심사가 사뭇 복잡해진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 어둠은 국가라는 이름을 전유하는 특정 권력집단들의 독과점과 야합의 문제다. 조선의 쇠락과 멸망 과정 이후 줄곧 일본의 식민통치, 미국의 신-식민통치에 부역함으로써 이 땅 주류 권력이 된 매판집단에게 국가란 그저 축재 도구다. 정권의 득실은 서로 다른 계기일 뿐이다.


촛불이 박근혜 패거리를 몰아낸 사건은 혁명의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사회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매판 본진에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 정권이 바뀌어 최윤민 엄마 박혜영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과 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지만 정말 해야 할 일에 손댈 힘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 제왕적 의회, 사법, 언론, 재벌, 종교 카르텔이 지배하는 나라다. 416 진실은 이 카르텔에 저항하는 시민의 힘을 더욱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길고도 어려운 싸움임에 틀림없다. 최윤민 엄마 박혜영은 이제 여기서 매판의 체제와 자신의 질병을 동시에 온전하게 직면한다.


상실의 고통이 불가피하게 가닿은 천명이다. 따뜻한 위로와 증상완화제인 약물은 잠시 취하는 휴식 정도로 끝낸다. 개인의 불안과 우울이 어떻게 정치의 한복판에 있는지, 화학합성약물로 단잠을 자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참된 치유란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한다. 최윤민 엄마 박혜영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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