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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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집안에 혁이 환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어요.·······아, 무섭더라고요. 그 집에서 더는 못살겠어서 이사했어요.(65~66쪽-강혁 엄마 조순애)


사랑하는 사람의 이제 여기 없음과 그리움을 겪는 방식은 한결같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차마 떠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차라리 떠나고 만다. 떠나는 것이 단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연속의 반어법적 표현이다. 오죽하면 무섭다 하랴.


생때같은 새끼 환영인데 뭐가 무섭냐고 말하면 안 된다. 환영은 부재를 너무나도 소름 돋게 일깨운다. 공포가 절망의 쇠꼬챙이로 쑤시며 와락 달려든다. 아련함이 단박에 부서진다. 은산철벽 저편으로 새끼는 격리된다. 어미가 떠난 것이 아니다.


새끼도 떠난 것이 아니다. 사악한 권력이 그 둘을 갈라놓았을 뿐이다. 제 목숨을 강탈당했으므로 새끼는 사무친 환영이 된다. 제 새끼를 강탈당했으므로 어미는 그 환영이 섬뜩하게 무섭다. 사무친 환영도 섬뜩한 공포도 범죄에 대한 증언이다.


416 이후 얼마간 나는 아이들의 임재를 감지하곤 했다. 아침마다 나는 그들 모두의 이름을 소리 내 불렀다. 그들은 들었다. 그들은 내가 시침 후 손 씻으러 가면 수돗물을 틀어주었다. 내 PC 속에 저장된 특정 ID를 바꿔주었다. 환각이든 신비든.


내가 아이들과 생사의 경계를 넘어 쉽게(!) 연속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생면부지의 남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연속성이 덜 입자적이기 때문이다. 단절감이 그나마 말랑했기 때문이다. 몸속에서 키워 내보내고 손으로 기른 어미는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으므로 무섭다. 어찌 생에서 사로 그리 쉽게 넘어간단 말인가. 어찌 사를 생으로 그리 쉽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어미는 새끼와 한 물질이 아니던가. 단절의 공포를 견딜 수 없어 떠나고 마는 것은 연속을 영원하게 기리기 위함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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