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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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이 첫 생일이 다가올 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두려웠어요. 그런데 첫째가 지현이 생릴 파티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안산에 사는 고려인들이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면서 지현이 생일을 함께 챙겨줬어요.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면서 고려인 음식으로 다 준비해주셨어요.·······


  생일이 다가올 때는 너무 힘들고 무서웠는데 막상 생일날은 썩 괜찮은 마음으로 보냈어요.·······

  지현이 아는 친구들이 그날만이라도 우리 지현이를 기억하고 마음만이라도 지현이와 함께하는 게 좋아요.(58~59쪽-남지현 엄마 전옥)


박탈감과 피해의식, 그에 상응하는 집요한 보상욕구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은 사유의 어떤 길모퉁이를 돌아나가더라도 결국은 ‘빼앗겨 억울하다’며 악에 바쳐 발버둥치는 곳에서 주저앉는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것을 빼앗은 ‘범인’을 찾아 헤맨다. ‘범인’을 잡으면 자기 인생의 온갖 불행을 그에게 뒤집어씌운다. ‘범인’을 아무리 비난하고 쥐어뜯어도 행복해지지 않으므로 그는 또 다시 다른 ‘범인’을 찾아 나선다. 오직 이 일에만 매달린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지도 않는다. 함께 삶을 나눈 사람들을 기억하지도 않는다. 오늘의 “범인”이 어제의 ‘범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피의 제의가 무한히 반복된다.


실제 이 상황 속에 있는 사람 자신은 정확하고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윤리적·인격적 문제를 본디부터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질병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끔찍한 박탈 때문에 이렇게 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과잉되거나 왜곡된 병리적 격정이 허구의 박탈을 들어낸다. 물론 이 상태가 오랫동안 반복되면 윤리적·인격적 차원으로 침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치유가 쉽지 않다.


박탈감과 피해의식, 보상욕구가 질병이 되느냐 여부는 일상이 무너지느냐 여부를 보고 결정한다. 그 차이는 만만치 않으나 질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 아뜩한 순간에서 건져내주는 힘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공감이며, 함께 삶을 나눈 사람 사이의 기억이다. 남지현 엄마 전옥이 질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순간을 포착해 건져내준 것은 안산 사는 고려인들의 공감이며 남지현의 친구들의 기억이다. 고려인은 “고려인”이라서 공감한다. 남지현 친구는 “남지현 친구”라서 기억한다. 박탈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공감과 기억의 공동체는 경험을 시공으로 엮어 생명 네트워킹 누리를 창조한다.


이런 공감과 기억은 삶을 전체성으로 이끈다.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어제와 오늘의 지평이 융해된다. 나만 그렇다, 내가 더 그렇다는 생각에 함몰되지 않는다. 어제가 오늘의 부재를 뜨겁게 채운다. 너무 보고 싶어서 사진조차 차마 볼 수 없었던 엄마 전옥이 딸 남지현의 생일 파티를 연다. 끔찍한 박탈은 끝내 그를 붕괴시키지 못한다. 박탈을 자행한 권력에 맞서 당당하다. 박탈감으로 병든 사람들에게 죽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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