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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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 보내고 진짜 눈만 뜨면 박근혜고 뭐고 다 죽여 버리고 싶었어요. 미치겠더라고요! 나는 무교였거든요.·······혁이 보낸 후에는 하느님을 곁에 안 두면 죽을 것 같았어요.·······하지만 하느님을 믿는다고 용서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혁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또 기도를 해요.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그래도 또 미워요. 그렇게 안 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30쪽-강혁 엄마 조순애)


416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시험에 들게” 했다. 물론 결과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반응으로 나타났다. 김삼환이 같은 세습재벌 교회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아이들을 빠뜨려 죽였다고 떠들었다. 어떤 사람은 그 동안 굳게 믿어왔던 하느님을 떠났다. 어떤 사람은 혹독한 질문을 거듭하며 여전히 하느님 곁에 머물러 있다. 어떤 사람은 뼈저린 고통 속에서 전혀 다른 하느님을 발견했다. 매우 드물게도 강혁의 엄마 조순애는 하느님을 처음 믿기 시작했다. 극우개신교 신자 대다수가 동의할 김삼환이와 같은 반응의 성격이 여타 반응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 같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들 모두가 전제하는 하느님은 그들의 삶을 보살피는 전지전능한 의로운 거대유일신이다. 이 전제가 스스로 떠안아야 하는 모순 때문에 실은 여러 다른 반응이 나온 것이다. 어떤 반응이든 그 신관을 넘어서지 않는 한, 길은 없다. 자기 아들을 살해한 자들에게 품는 살의가 너무 괴로워 하느님에 의지해 용서하려 했으나 살의는 그때마다 되살아나고 그래서 그때마다 도리어 그 잘못(이라 스스로 생각한 것)을 용서해 달라 기도하는 참담한 악순환, 기막힌 도착倒錯을 어찌 해결한단 말인가. 조순애의 울음소리를 듣고 침묵하는 하느님은 박근혜의 웃음소리를 듣고도 침묵한다. 앞의 침묵은 징벌이고 뒤의 침묵은 포상이다.


거대유일신이 침묵으로 징벌과 포상을 뒤바꾸는 중심 저 멀리, 거대함에 금을 내어 소소함의 진실을 드러내고, 유일함에 금을 내어 여럿이 함께함의 진실을 드러내는 참 하느님 운동, 곧 소소함의 네트워킹[小少沁心]이 변방부터 일어난다. 변방이기에 416은 사건이 되고 가족이 되고 운동이 되고 네트워킹이 된다. 엄마들은 각각의 곡절 속에서 스스로 참 하느님이 되어간다. 스스로에게 기도하고 스스로를 용서한다. 스스로 진실이 되고 심판이 되고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된다. 강혁의 엄마 조순애는 강혁의 엄마를 넘어 공동체 엄마가 된다. 공동체 엄마 조순애는 이미 미움을 용서의 탕제로 달여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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