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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지현이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 너무 무서워요.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내가 도망가는 것 같아요. 사진을 보면·······내 안의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지현이 어렸을 때 모습을 보면 또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언제쯤 사진을 볼 수 있을 까·······잘 모르겠어요.(29쪽-남지현 엄마 전옥)
까꿍 놀이를 통해 아기는 공포·불안에 감응하는 법을 배운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무섭지만 놀이 삼을 수 있는 것은 다시 나타리라는 신뢰·희망 때문이다. 신뢰·희망이 공포·불안과 절묘하게 어긋나고 맞물리면서 경이감을 분사한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놀이가 무너진다. 놀이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거나 끝내 놀이가 복원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면 트라우마로 침전된다. 침전된 트라우마가 폭발하면 마음병이 된다.
공포·불안이 신뢰·희망으로 전화되는 순간을 더는 기대할 수 없을 때, 그 사실을 확인하고 소환해 절망을 선고하는 사물, 그 사물에 깃든 기억 앞에서 무심할 수 없기가 어른이라고 어찌 다르랴. 전옥이 무서워하는 것은 “마음속에 자리 잡는” 남지현이 오로지 “사진”으로만 존재한다는 절망의 확인이다. 확인이 절망을 영원 속에 가둘 테니 말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딸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차마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사진이다. 사진은 다만 사진이 아니다. 찰나적으로 상실을 재현하고 절망을 격동시키는 주술이다.
이 주술은 저주인가? 저주다. 저주인 한, 그 상실과 절망은 삶의 일부가 아니다. 삶의 일부가 아닌 한, 그 상실과 절망을 야기한 죽음은 대상으로 남는다. 대상인 한, 죽음은 산 사람의 삶의 내부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산 사람의 삶속으로 들어와야 죽음은 산 사람의 삶에 새로운 신뢰·희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신뢰·희망은 저주 주술을 전조로 바꾼다. 전조인 남지현의 사진을 엄마 전옥이 볼 수 있는 날은 이미 당도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