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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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을 보고 눕지를 못해요. 주아가 그 배에 갇혀서 숨 못 쉬었을 생각을 하니까 벽이 내 앞에 있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요.(24~25쪽-김주아 엄마 정유은)


416 직후 한의원에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공황이나 우울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환자 수가 다소 늘었다. 그러나 전체 환자 수는 급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는 얼른 이해했지만 후자는 의아해했다. 얼마만큼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아온 몇몇 환자가 심경을 토로하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아이들이 그렇게 참혹하게 죽어간 상황에서 허리 좀 아프다고 침 맞으러 오는 게 죄스러웠다는 유의 이야기였다. 정색하고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더라도 누구든 이와 비슷한 마음 상태 속에서 꽤 오랫동안 힘들어했으리라.


이게 인간이다. 인간 형상을 했을 뿐 신의 경지에 올라 416을 백안으로 “내려다보신” 분들이 계셨음은 물론이다. 광화문 분향소 앞에서 ‘빨갱이’ 유가족을 단호히 꾸짖었던 기독교 성도들이 그렇고, 치킨으로 성찬예식을 거행하여 ‘단식 쇼’ 중인 유가족을 감화시켰던 일·베 성자들이 그렇고, ‘죽은 자식 정치에 이용하는 파렴치한’ 유가족을 엄히 경책한 자유당 선량들이 그렇다. 이 신들은 교통사고 아닌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아차린 416가족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추방당한 인간들을 향한 자비와 공감은 금물이었다.


추방당한 인간들을 향한 자비와 공감으로 찰나에서 영원까지 살아내야 하는 천명이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있다. 질병, 특히 마음병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추방당한 사람이다. 사회적 약자를 생물학적 약자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참 의자醫者로 살려면 정치적 의로움은 필수다. 현실은 판이하다. 주류 양의집단은 태극기부대와 비슷한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주류 한의집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실에 투명한 소수 의자들은 무능으로 내몰리며 익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익명을 강요당하는 삶의 동일한 맥락에서 나는 416아이들과 416가족과 416운동과 416공동체와 416네트워킹혁명을 극진히 맞이하고 모신다. 내 개인의 익명화에 저항하는 일이 416의 익명화를 저지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자각은 내 인생의 어떤 다른 지평 제시가 아닐까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한다. 사랑은 익명으로 할 수 없다는 진리가 어떻게 물질적 본질을 지니는지 오달지게 알고자 홀로 앉을 시공간이 미상불 묵직하게 휘지 싶다. ‘4월에는 이별한다.’고 표현했을 만큼 아팠던 이 4월의 마지막 날 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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