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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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경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게 어떨 때는 소름끼쳐요. 여전히 가슴이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아이 없는 이 공간에 익숙해져가는 것이 문득문득 속상하고 너무 미안해요. 마음 같아서는 죽을 때까지 이 일상도 낯설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낯설지가 않아요.(23쪽-정예진 엄마 박유신)


낳아주신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하마 육십년 가까이 되어간다. 폭을 맺지 못한다. 세 번째 계모를 마지막으로 엄마라고 부른 것도 오십년 가까이 되어간다. 엄마라는 말을 내가 입에 올리는 순간 주위 사람들이 갸웃할 것 같다. 기억이 바래지면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는가 보다. 상실과 부재의 경계선이 지워질 테니 말이다.


부재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내가 그리워할 길은 없다. 어머니 없는 풍경이 본디 내 자연이며 나는 이미 거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박유신에게 정예진이 부재일 수는 없다. 불의한 권력이 강탈해간 딸을 어떻게 부재로 여길 수 있나.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져도 소름끼치는 어떨 때가 있으며, 문득문득 속상하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 있는 한, 딸은 상실로 엄존한다.


상실은 끊임없이 각성을 소환한다. 각성은 통증으로 시작된다. 진통제를 거절하면 통증은 생명의 결을 변화시킨다. 통증을 끌어안고 삶을 곡진히 통과하는 과정에서 생명은 네트워킹이 되어간다. 네트워킹은 입자 통증으로 하여금 파동 장을 이루게 한다. 이 거룩한 역설로 말미암아 상실은 오도의 표지가 되고, 세상은 성숙의 은총에 깃든다. 전패진승全敗眞勝.


엄마가 부재의 실재가 됨으로써 나는 삶의 물질성 또는 몸으로서 삶을 상실했다. 마치 나 자신이 상실의 잔여인 듯하다. 잔여의 삶은 익명의 집요한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끝없이 미끄러진다. 미끄러짐이 선명하게 감지된다.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 미안한 마음에 의지해 스스로 스스로에게 엄마가 되어준다면 내게도 오도와 성숙의 기회가 오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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