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종교가 쇠퇴하는 데에는 과학 발전과 물질 번영 같은 많은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다. 그러나 유일신 종교가 더 이상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전능한 실체가 세상을 돌보고 모든 고통은 내세 때문에 정당화된다는 것을 간절하게 느껴야만 할 필요가 있는 타락한 정신이 더 이상 강력하지 않은 까닭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유일신 종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종류의 믿음과 관행에 대한 많은 증거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물결 당시에 발생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밀교적 전통이 주류로 진입하였다.(411쪽)


종교, 특히 거대유일신교의 쇠퇴 추세는 분명하다. 제도적 종교가 정치경제적 이권세력으로 엄존하는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인류 정신에 더 이상 중요하지도 강력하지도 않은 형해다. 이대로 종교는 사라지고 마는가? 아니다. 타락한 정신이 만들어낸 거대유일신을 없애고 무신론을 집어든 정신도 타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타락에서 벗어난 인간 정신이라면 신의 참 실재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스티브 테일러는 그다지 찰진 관심을 지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종교를 다루는 문맥 바깥에서 근원적 의미로 보면 종교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종교는 내가 생각하는 종교보다 훨씬 덜 관건적인 무엇인 듯하다. “유일신 종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종류의 믿음과 관행에 대한 많은 증거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물결 당시에 발생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밀교적 전통이 주류로 진입하였다.”는 언급 이상의 내용이 이 책에 더는 없다. 제1차 물결 당시에 발생한 밀교적 전통이 주류로 진입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제2차 물결일 수 있는가? (종교의) 제2차 물결에 대한 인식이 투미해지지 않으려면 (종교의) 제2차 타락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야 한다.


제1차 타락이 기독교를 일으켰다면, 제2차 타락은 기독교가 일으켰다. 제국주의의 선봉도 후견도 모두 기독교였다. 제1차 물결이 기독교 밀교 전통을 일으켰다면, 제2차 물결은 기독교 밀교 전통을 주류로 진입시켰다라고 도식화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주류로 진입한 기독교 밀교 전통이 제국주의 타도의 선봉이자 후견이 되지 않는 한, “제2차”라는 표현은 무의미하다. 종교가 제국주의를 무너뜨린다? 허무맹랑하게 느끼는 사람은 가짜 종교의 노예거나 천박한 무신론의 희생양이다.


제국주의 아킬레스건을 벨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의 소재는 작은 공동체, 공동체의 평등한 연대, 관용이 일으키는 융합의 시너지다. 전형적인 모델이 이로쿼이연합이다. 이로쿼이연합 정신의 핵심은 그들의 신화다. 그들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영성을 “이로쿼이 종교”라 이름 한다면 그 내용은 공동체적 각성, 생태학적 다신, 주술적 합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대로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는 힘인 작은 공동체, 공동체의 평등한 연대, 관용이 일으키는 융합의 시너지와 상응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참 종교는 개인적 수행과 영성을 넘어서는 사회운동이어야 한다. 헤아리기조차 힘든 장외 미세생명체 하나하나가 신임을 알고 경외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과학 너머의 상호작용이 주는 황홀함의 체현이어야 한다.


주류로 진입한 밀교 전통이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다만 제1차 물결의 리뉴얼에 지나지 않는다. 제1차 물결의 리뉴얼로는 세계가 지니는 신성함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신성함의 저 불온한 조건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성함의 불온한 조건은 “주술”이란 말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다. 주술은 네트워킹 화학이다. 이 숭고한 화학 방정식에는 미지수 너머의 해가 있다.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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