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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자아폭발과 함께 어른의 아이에 대한 태도와 처우가 급변했다.·······아이를 때리는 행위가 무엇보다도 사하라시아 어른의 특징적 현상으로 보인다.·······아이에 대한 신체적 학대는 규율을 가르치는 하나의 필수적인 방법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래야 아이는 타고난 “사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272쪽)
타락하지 않은 문화의 아이는 타락한 문화의 아이와 정신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타락하지 않은 문화에서는 부모가 실제로 자녀를 통제하고 훈육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지 싶다. 왜냐하면 타락한 문화의 아이보다 날 때부터 덜 제멋대로기 때문이다.(275쪽)
“흔히 아이를 천사라 한다. 그럴 수가. 다들 아이를 순수하다 한다. 그럴 리가. 아이가 풍기는 cute effect에 사로잡혀 어른이 지어낸 물색없는 말이다. cute effect는 어른에게까지 연장된다. 유형연장neoteny 뚜렷한 유명 인사를 둘러싸는 팬덤이 그 전형적인 예다.
타락 DNA가 아이 때 잠복하다가 어른 되면 갑자기 발현하는 것이 아닌 한, 아이 또한 타락한 정신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정보와 에너지, 그리고 구조가 아직 덜 갖추어졌을 뿐이다. 이 상태를 학대의 기회로 삼은 타락한 어른이 나쁘다 해도 진실은 변함이 없다.
그 진실에 터하여 정보와 에너지, 그리고 구조가 아직 덜 갖추어진 아이를 사랑과 지혜로 양육하면 타락 초월의 길이 열린다. 누가 그 길을 여는가? 역사를 통해 들어온 악의 진실과 유전을 통해 빚어진 아이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감응하는 변방 사람이다.”
타락, 즉 자아폭발과 유전의 사실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황당한 ‘찌라시’다. 그 경우, 장구한 세월 동안 자행되어온 아동학대의 본질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는 순수 천사고 이에 대한 어른의 근원적 열등감이 아동학대를 낳았다, 정도다.
그런가? 그렇다 치자. 그러면 아이가 자라서 어른 되는 법인데, 어른은 어쩌다 순수 천사를 잃고 열등감에 휘말리게 되었는가? 사춘기든, la Critique든, 화쟁이든, 사자 시기든 인간이 성장 또는 각성하는 과정의 불가피 또는 불가결한 국면에서 드러난 증상이다. 그런가?
어떤 설명구조에 마음이 쏠리는가는 취향 문제다. 그럴 루가. 결국은 같은 이야긴 것을. 그러면 딱 하나의 내러티브가 남는다. 순수고 타락이고 나발이고 다 부질없다. 인간, 본디 그렇고 그렇다,다. 있는 그대로 여기서 그럭저럭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거다. 나쁘지 않다.
왜 나쁘지 않은가? 인간, 본디 그렇고 그렇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시니컬하지만, 단연 아니다. 빛과 어둠이 비대칭의 대칭으로 모순적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인간의 진면목이라는 담담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어디 인간뿐이랴. 세계 전체의 진실이고 진리 아닌가. 그러니
홀연 돌아온다. 비대칭의 대칭은 불변하는 실체의 공시 구조가 아니다. 역동하는 통시 맥락을 따라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부서져 마주 가장자리를 새로이 연다. 아이의 맥락에서 빛과 어둠은 어떤 대칭을 이룰까? 어머니 품에 가까운 만큼 빛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것이다.
빛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때 그 빛을 거두어들이면 상황이 비가역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만3세에서 0세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학대는 치유 불가능한 깊은 정신병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아동학대는 어른이 저지르는 가장 근원적인 악이며 범죄다. ‘미 투’ 운동이 아이에게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