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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실로fantastically “생명의real” 장소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
그러나 우리 타락한 사람들에게 세계는 도리어more 죽음의dreary 장소다.·······우리에게 바위나 강, 나무는 원자와 분자의 비활성 집합체일 뿐이다.(193-194쪽)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인지 수면 상태가·······의미에 대한 인식에서 우리를 단절시킨다는 사실이다.(197쪽) (문맥을 고려하여 fantastically “real”과 more dreary의 번역을 바꿈-인용자)
한의원 원장실에 놓인 사진 넉 장에는 내 아내와 딸, 체 게바라, 그리고 나무토막을 든 소녀가 담겨 있다. 물론 뒤 두 사람은 코르다가 찍은 것이다. 『나무토막을 든 소녀』는 코르다의 삶을 바꾼 작품이다.
코르다가 어느 가난한 시골을 찾았을 때 어여쁜 소녀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으려 한다. 소녀는 무서워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안고 있던 나무토막을 쓰다듬으며 소녀가 말한다. “울지 마, 아가야.” 인형 살 돈이 없어서 나무토막으로 대신한 것이다.

나는 가끔씩 이 사진 앞에 선다. 체 게바라 사진 앞에 설 때보다 살갗이 훨씬 더 얇아진다. 나무토막에서 생명을 감지하고, 아가의 의미를 발견하는 소녀의 영혼이 내 “둔감화 기제”(195쪽)를 벗겨내기 때문이다.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없고, 있기는 하냐고 따질 수도 없고,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 “의미”다. 그저 이렇게들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의미는 “관계의 실재다. 접합과 교감이 일으키는 사건이다. 사랑과 상상력이 빚어내는 미학이다. 생태학이 피워 올리는 주술이다. 연속성과 우연성의 교차가 창조하는 경이다.”
소녀가 품은 세계를 물활론이라 픽 웃으며 지나치는 ‘어른’의 눈에 그 세계는 죽은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세계가 모두 거룩하다는 진리를 비웃는 인간에게 인과율과 합리성, 그리고 개체끼리의 상거래만이 성숙한 질서다. 이 어른 인간은 무의미한 세계를 오직 착취할 따름이다. 착취 결과는 예컨대 이렇다.
과학 저널 <생물 보존>에 따르면 현 추세가 계속될 때 100년 안에 지구상의 모든 곤충이 멸종된다고 한다. 곤충의 멸종은 인류의 멸절로 이어진다. 인류 멸절은 결국 인류가 자초한 것이다. 급격한 곤충 소멸의 주요 원인이 집약농업, 도시화, 기후변화이기 때문이다.
“인지 수면”은 다만 인지의 문제가 아니고 수면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문제고 생사의 문제다. 나는 다시 한 번 일어나 『나무토막을 든 소녀』 앞으로 간다. 세상에 다시없이 예쁜 아가를 안고 있는 소녀의 깊은 눈을 마주한다. 거기 신이 춤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