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민하게 발달된 우리 자아인식은 우리가 머릿속에 갇혀 있다는 인식, 우리가 두개골 안에 있는 하나의 “나”이며 우주의 나머지와 다른 모든 인간은 다른 편에 있다는 인식을 준·······다. 그 결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독”을 인식한다.·······

  이 고독에 대한 인식은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을 동반한다.·······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떤 부족 인식, 우리 자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인식을 가진다.·······“원초의 정신적 외상”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자아 고립이란 우리가 항상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으며, 절대로 거기에 충분히 참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190-191쪽)


불완전함” “부족” “충분하지 않다” “잃어버렸다로 변주되는 혼자라는 “인식”은 외로움이라는 정서 상태와 맞물리며 기조정신으로 고착된다. 고착된 그 기조정신에서 무한히 공급되는 결핍의식이 두려움·탐욕·어리석음을 확대재생산한다. 자아폭발의 근원 풍경이다.


불완전함은 단지 일부 또는 개체이기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전부 또는 전체에 “참여할 수 없음”이 그렇게 만든다. 참여 불능의 요체는 생명의 파편화다. 이성의 쿠데타로 정신과 육체 모두 파열되어 인간은 “거룩한” 참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이 참여해야 할 거룩한 세계에는 세 빛깔 실재가 합류한다. (인류)공동체와 (유기체)생태계, 그리고 (초월)네트워킹. 자아폭발로 주·객관적 고독에 갇힌 인간은 그 어떤 실재를 통해서도 거룩한 참여로 나아갈 수 없다. 어찌 하면 거룩한 참여로 나아갈 수 있을까?


자신이 처한 고독 상태를 철저히 처절히 톺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실제로 자신이 객관적 고립상태에 있다는 사실은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내남없이 그런 겉모습이므로 성찰이 일어나기 어려워서다. 이와 달리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결핍의식과 거기에 젖줄을 댄 두려움, 탐욕, 어리석음은 감지하기 어렵지 않다. 으레 맞다 싶어 무심코 지나가지 않으면, 정색하고 유심히 응시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야차로까지 타락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일단 문제의식이 싹튼 뒤에는 자신의 경계 안에서 머무르며 자신을 향해 되작거리고 집적거리고 끼적거리고 덤비는 일의 맛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부터 파열의 결과를 역으로 파탄 내는 전복이 일어난다. 전복의 길이 열릴 때 우리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틸리히의 말을 곰곰 음미할 수 있다.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한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은 고독이다.”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니. 자아폭발 일으킨 인간의 방어기제로서 ‘조증’ 또는 ‘정신분열증’일까? 딴은 그렇기도 하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경지에 올랐다고 우기는 자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알기에 우리는 이 말이 전부 또는 전체로서 세계에 온전히 참여하기 위한 역설적 전제임을 알아차린다.


“혼자 있는 즐거움으로서 고독을 제대로 알면 세계에 거룩하게 참여할 수 있다.”


참여는 한자로 參與다. 參은 별들이 마치 사람처럼 고유한 빛깔을 지닌 채 모여 함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광경을 그린다. 與는 사람들이 널리 섞여 서로 정을 나누며 사는 풍경을 그린다. 하늘에서는 무궁하게(숫자 3) 땅에서는 무진하게(숫자 8) 개체들이 서로 네트워킹 해서 전체를 형성하는 무한한 시공 사건을 묘사한 말이 참여인 셈이다.


전체에 참여하는 일이 거룩하려면 두 가지 모순된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한다. 개체들은 서로 다른 고유함을 지닌다. 고유한 개체는 자발적으로 경계를 깨뜨려 서로 관계망 속으로 들어온다.


고독은 스스로 그 검푸른 어둠에 도저해지고야 스스로 흔쾌히 부서져 빛으로 열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