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났는데 웬일인지 출근길 지하철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서너 정류장 지나 내가 자리에 앉을 무렵이었다. 누군가 저쪽에서 크게 하품을 했다. 어쩌다 한 번이지 싶어서 그냥 지나쳤다. 아니다. 마치 자신의 방에 혼자 있으면서 내는 것처럼 크게 하품 소리를 연이어 냈다. 그리고 신문을 펴고 접으면서 부스럭대고 탁탁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곁들였다. 나는 궁금 무인지경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사람이었다. 까맣게 염색한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겨 포마드 발라 붙인 모습이 실히 단정해 보였다. 노약자석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럿 비어 있는 주위 좌석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임산부 보호석에 꼿꼿이 앉았다. 그의 손에는 물경 대한민국 최대 최고 가족신문이 들려 있었다. 잠시 뒤 그 남자사람은 상체를 뒤로 비스듬히 젖히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잠을 청하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저 남자사람이 특이한 ‘진상’인가. 아니다. 70대라면 다수가 저런 행태를 보인다. 이게 대한민국 사회다. 아뜩하다는 생각이 들이닥친 바로 다음 순간에 풀쑥 질문 하나 솟아오른다. 60대 중반으로 들어선 나는 그러면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얼른 주위를 살피고 자세를 고친다. 지하철역을 나서며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늙어가며 남기는 흔적에 부끄러움이 있을까, 행여 흘린 어른답지 못함을 어떤 젊은이가 치우고 있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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