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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보통 “우리 스스로가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는 것”과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손해를 끼질 가능성이 있어도 우리 욕망을 다른 사람-또는 피조물이나 환경-안녕보다 우선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때때로 끔찍할 정도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당하는 사람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155-156쪽)
세월호사건, 그 진실을 덮은 채 우리사회는 벌써 6년차 해를 맞아 한 달 가까이 흘려보냈다. 오늘 아침 새삼 250명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조관우의 추모 노래 <화애>를 가만가만 따라 부른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모든 기억이 슬프고 아프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유가족 몇몇의 식사 광경을 지켜보던 기억이 선연하다.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타박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상이 칼날 위에 서 있던 그분들이기에 나는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못했다. 없는 듯 있는 듯 앉아서 술 한 병 비우고 일어섰다. 아뜩한 질문 하나 솟아올랐다.
“내가 대체 얼마만큼 저 분들의 심정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사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두 해 가량 나는 매일 울다시피 했다. 주말마다 광화문으로 향할 때는 인근에 다다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르곤 했다. 내 육친을 여의었을 때보다 슬픔과 아픔을 더 실감했다. 그럼에도 나는 성호 엄마, 유민 아빠 슬픔과 아픔에 공감했다고 감히 말할 자신이 없다. 스티브 테일러를 읽고 난 시선으로 돌아본다.
“내가 타락한 인류의 DNA를 물려받아서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인가?”
사냥감인 동물에게조차 “존경과 매혹” “공감과 숭배”(157쪽)의 감정을 가지는 타락 이전 인류의 마음은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 타락이 분명한데, 단식하는 유족 앞에서 치킨 뜯어먹고 자빠진 족속의 마음 또한 바이 상상할 길 없으니 이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여기서 공감이 본성이냐 능력이냐 하는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삶에서 우리가 직접 부딪치는 문제는 “끔찍할 정도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의 실재고, 그 행동을 인간만 저지른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비인간적 인간이 존재한다는 이 진실을 떠나서는 뭘 떠들어도 공허하다. 타락이든 모순이든 잔혹성과 비인간성을 게워대는 공감 부재의 생생한 현장에서 나와 너는 오늘 공감의 틈을 내고 내일 공감의 길을 열어야 한다.
공감의 틈을 내고 길을 여는 역사는 공감의 틈을 막고 길을 닫은 바로 그 역사의 지평에서 행진한다. 2014년 4월 16일은 여전히 그날의 음성으로 나와 너의 행진을 부르고 있다. 아뜩한 질문을 그대로 부둥켜안고 가뭇없는 공감의 땅을 찾아 나서라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