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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의 소설가 D. H. 로렌스도 실제로는 인류학자였다.·······1920년대에 그는 3년간 가장 좋은 기간 동안을 뉴멕시코의 목장에서 보내며, 남서부의 아메리카 원주민들, 특히 푸에블로 인디언들과 긴밀한 접촉을 가졌다.·······로렌스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인디언의 정신상태가 유럽인들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디언들의 의식(consciousness) 방식은 우리가 의식하는 방식과 다르며 우리에게 치명적이다.·······두 가지 방식들, 이 두 흐름은 결코 통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화해하지도 않는다.”고 썼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차이점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는, 인디언들은 우리처럼 우주와의 분리 상태를 체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분리된” 반면 인디언들은 “모든 생명체와의 합일·······개인들이 거의 분리되지 않은 고대 종족의 일치”된 정신 상태를 유지하며 산다.(151쪽)
일부 식민주의자들은·······“이기주의self-ness”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켜야 비로소 원주민들을 충분히 “문명화”시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헨리 도스 상원의원은 1887년 체로키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그들은·······더 이상 발전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땅을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밑동인 이기심selfishness이 없다.”고 설명했다.(154쪽)(원문 단어 인용자 붙임)
『남자친구』 마지막 회를 우연히 보았다. 주인공 차수현에게 아버지가 이런 내용의 말을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이해한 대로 옮긴다.) “주위부터 돌보는 네 마음 안다. 그러나 근원적인 질문을 받으면 너 자신부터 돌보는 거야.” 그런가?
그렇다. 그러나 조건을 초군초군 챙기지 않으면 치명적 실수가 된다. 하나, 주위부터 돌보는 것이 삶의 기조여야 한다. 둘, 근원적인 질문 앞이어야 한다.
주위부터 돌보는 것이 삶의 기조인 사람에게 이런 충고가 가당한 까닭은 오늘 우리가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주위를 돌보는 일은 곧 나를 돌보는 일이다. 문제될 일 없다. 오늘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 “분리”된 주위를 돌보는 일은 십분 문제 된다. 그 문제의 이름이 저 뜨르르한 우울증 아니던가. 우울증은 분리문명 수탈구조의 희생양에게 나타나는 정서 상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돌보라고 말하는 것은 누락 불가한 처방이다. 자기 파괴적 희생을 멈춰야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 기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필경 근원적 질문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아버지의 처방은 딸을 또 다른 일극으로 이끌기 위함이 아니다. 양극 대칭의 진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그 말을 둘러싼 문맥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익명으로 일방이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기 고유한 자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서로 주고받는 대칭행위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의 다음 기약은 결국 다시 주위를 돌보는 일이다. 진정으로 주위를 돌보려면 자신을 돌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 내게서 비롯하여 네게로 번져가는 삶이 진리다.
이 진리의 각성은 분리를 뼈아프게 경험한 인간에게 불가피하고 불가결하다. 불가피하다는 판단은 군말을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불가결하다는 판단은 각별한 주의를 불러낸다.
“이기심selfishness” 또는 “이기주의self-ness”를 문명의 필수요소로 여기는 것이 어디 일부 식민주의자들뿐이겠나. selfishness, self-ness를 이기심, 이기주의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분리문명 속에서 우리 모두가 이미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이기주의자로 살고 있다. 이렇게 타락한 우리에게 내게서 비롯하여 네게로 번져가는 삶이 진리라는 각성은 결코 결락시켜서는 안 될 당위다.
타락의 심리학에서 보면 이런 당위는 “치명적”이다. 이때 치명적이란 말은 생명을 위협한다는 뜻이지만, 본디 죽을 위험에서 살려낼 만큼 결정적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분리의 사람에게 “통합”도 “화해”도 불가해 보이는 이 “의식(consciousness)”으로 살아갈 때 도리어 참 삶의 길이 열린다. 이 경이로운 전복의 칼날 위에 설 자 누군가?
“당신은 이별을 하세요. 나는 사랑을 할 겁니다.” 『남자친구』의 또 다른 주인공 김진혁이라면 기대해 볼 만하지 않겠나. 물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정반대로 뒤집힌 드라마였다면 내겐 더 좋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