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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평점 :
머튼은 수도사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형제들이여, 이제부터 모두 스스로 서야 합니다.”
우리의 주된 사회(정치, 경제, 종교) 제도들이 심각한 기능부전에 빠져 있는 역사적 시점에 내게 큰 울림을 주었던 그 연설에서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구조는 좋은 것이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좋아질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 구조라는 건 제거될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이 제거되었을 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98-99쪽)
사회구조가 모두 제거되는 상황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스스로 서라는 충고는 무의미하다. 충고하지 않아도 그리 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다 입을 대는 것은 췌사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면 머튼이 말한 것은 어떤 상황일까?
현실국가가 엄존하는 한, 구조의 전면 제거란 없다. 오히려 극소수 과두지배층의 금고지기 노릇으로 영락해갈수록 구조는 강고해진다. 그 강고한 구조가 수탈당하는 다수 처지에서 보면 제거된 ‘구조’다. ‘구조’는 본디 “좋은 것이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좋아질 수 있도록·······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런 모순이 발생한다.
이 모순 속에서 “이제부터 모두 스스로 서야 합니다.”라고 한 충고는 무엇을 향하고 있나? 머튼이 고답적 각자도생을 설파했다고 의심하는 것은 모독일 터. 구조의 부질없음을 간파하고 있으므로 그는 정확히 중도의 칼날을 세웠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다름 아닌 “‘고독의 공동체’ ‘홀로 함께 있는’ 한 가지 방식”(98쪽)이다.
각자도생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다. 엄밀 공동체는 바로 이 경계에 서야 한다. 문제는 통속한 공동체 대부분이 구조(, 또는 그에 가깝다)라는 사실이다. 종교성을 띨 경우 더욱 위험하다. 그 종교성이 일극집중적일 경우 더더욱 위험하다. 이 위험한 사이비 공동체는 결국 지배구조에 부역하고 만다.
엄밀 공동체는 각자도생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고,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둘이 된다. 포개고 쪼개기를 찰나마다 가로지르며 평등과 자유, 그리고 평화의 파동波動장을 창조한다. 존엄한 개체 의식과 네트워킹을 통한 전체 지향에 동시성을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다. 동시성이 구성원에게 일어나는 꼭 만큼이 참 공동체다.
동시성을 동시에 일으켜야 할 때도 있다. 우리 공동체는 얼마 전 그 묵시록적 사건을 특별한 방식으로 경험했다. 그 특별한 경험은 허다한 불길을 이루며 번지고 있다. 더디 날래게 묵시록적 과제를 골골이 공유해가고 있다. 극소수 과두지배층이 단말마의 광란으로 치닫는 동안 바리들은 고요히 공동체 무한 네트워킹에 배어든다. 세상을 바꾸는 분노는 고함치는 입이나 삿대질하는 손에 있지 않다. 변방으로 걸어가는 발에 있다. 이것이 희망이다.
섣부른 낙관보다 더 나쁜 것이 가차 없는 비관이다. 그 가차 없음은 현실을 결결이 겹겹이 모르는 데서 온다. 현실을 결결이 겹겹이 모르면 적고 작은 존재들을 무시한다. 적고 작은 존재들의 공동체 운동이 신의 보행이다. 자작자작·······발맘발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