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에 가면 추사의 향을 달리 맡을 수 있는 편액을 둘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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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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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위 것은 추사가 죽기 사흘 전에 남긴 유작이다. 추사체를 머금되 훌쩍 넘어 스스럼없이 네오테니에서 노니는 절정고수의 무애 자재함으로 신비감마저 군더더기 감정 같이 느껴지게 한다. 사찰에 걸릴 편액임을 알면서 병중에 썼다는 말을 굳이 남긴 까닭은 알 길 없으되 아마 이조차도 경계 너머 마음 아닐까 싶다.
아래 것은 추사의 제자 추금秋琴 강위姜瑋의 문인이었던 백련白蓮 지운영池雲英의 글씨다. 추사체에 대한 초보적 기억만으로도 이 글씨에서 추사를 떠올릴 수 있다. 그 눈으로 보면 판전 글씨보다 잘 쓴 글씨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그러면 판전 글씨처럼 써야 하느냐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보편일 수 없다. 자신의 지향과 삶의 조건이 만나는 시공에서 지극함으로 각기 인연을 지을 따름이다. 추사는 추사의, 백련은 백련의 마음 다함에서 노닌다. 나는 내 마음 다함에서 노닌다. 이번은 영산전 앞에 오래 머문다. 이 머묾이 그저 스쳐갈 작은 우연이라면 그게 고마운 만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