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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평점 :
가치 있는 원대한 일을 찾으세요. 사랑, 평화, 그리고 정의를 확산시키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고결한 가치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에 존경받는 인물을 생각해보세요.·······영웅들은 불가능한 일들을 떠맡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그 일에 계속 매달렸습니다. 효율성을 뛰어넘는 기준에 맞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의 이름은 ‘충실함’입니다.(75쪽)
‘충실함’이라고 번역한 것은 faithfulness다. 이 번역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문맥을 고려하면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faith란 단순한 믿음·신뢰가 아니라, 신/하늘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자세를 함축한다. “가치 있는 원대한”, “사랑, 평화, 그리고 정의를 확산시키는”, “고결한 가치에 헌신하는”이라고 표현한 파커 J. 파머의 뜻을 살려 번역하자면 ‘숭고함’ 정도가 더 어울려 보인다. 숭고하다는 것은 장엄한 대상을 우러르며 그 속성을 본받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숭고함에 효율과 성과가 왜 없으랴만 효율과 성과로써 숭고함을 말하면 안 된다. 본디 숭고함은 “불가능한 일들을 떠맡”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그 일에 계속 매달”리는 그 자체가 숭고함이기 때문이다. 숭고함은 인간에게 깃든 지극한 소소함과 지극한 다대함을 일깨워가는 과정이자 그 과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다. 이 노래를 숭고미라 한다.
숭고미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자연Sein으로 갖추어져 있다. 인간만은 당위Sollen로 갖추어 나아가야 한다. 분리 역사가 낳은 과잉 사회화 때문이다. 사회악으로 발현되는 공포(불안)와 탐욕, 그리고 어리석음이 숭고함의 감각을 부숴버렸다. 숭고함을 되찾으려면 숭고함을 문제 삼아야 한다. 문제 삼으려면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치우침이 드러난다. 치우침을 드러내면 비대칭의 대칭인 진실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진실 전체가 다름 아닌 장엄이다. 장엄을 목도하고서도 숭고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더는 인간이 아니다.
더는 인간이 아닌 자들의 과두체제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아베 따위의 야차들이 인류 전체를 음모와 수탈의 무저갱으로 끌고 내려가는 중이다. 변방과 아亞중심 사이를 요동하는 대한민국 상황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촛불정부라고 하지만 매판의 철벽을 뚫기에 턱없이 부족한 힘 때문에 협공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숭고함은 물색없는 순수거나 자기 파괴적 희생이기 십상이다. 어찌할까.
길은 하나다. 숭고함으로 나아가는 적고 작은 사람들이 나지막이 합창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