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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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에 있는 생경한 모든 것을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바깥세계에 있는 생경한 이들도 모두 똑같이 맞아들이세요.(74쪽)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말이 있다. 오늘의 우리에겐 “생경한” 어휘다. 일제가 노예처럼 굴지 않는 조선 사람을 이리 불렀다.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이란 뜻이다. 항일투쟁을 했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식민치하의 모든 조선 사람이 잠재적 불령선인이었다. 난민難民이었다.


국권 상실기가 끝나고도 난민 상태는 계속된다. 미군정을 거쳐 친일파가 다시 국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명목만 빼놓고 대한민국은 시종일관 친일파의 손아귀에 있는 신식민지이므로 대한민국 국민은 여전히 난민이다. 난민이 난민을 난민亂民으로 몰아 학대하는 국가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니 난감할 따름이다.


<시사인>583호에 걸출한 항일투사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 이야기가 실렸다. 신식민지 치하에서 매판 권력의 눈길을 피해 성을 신 씨로 바꾸고 살아왔다 한다. 참으로 참담한 자발적 ‘창씨개명’이 아닐 수 없다. 매판 권력에 붙은 소수가 있지만 많은 항일투사의 후손이 사실상 차영조처럼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일제와 그 부역집단이 이 땅에 뿌린 죄상의 낭자함은 미상불 천년을 넘어서도 치워지지 않으리라. 어찌할까.



난민으로서 자신의 내부를 정직하게 정색하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과 세월호 가족, 아니 ‘개돼지’ 취급 받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의 본질은 같다. 언제까지 불령선인인 자신을 “생경한” 눈길로 볼 텐가. 언제까지 “바깥세계에 있는 생경한 이들”을 자신과 다르다고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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