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할 뿐이다. 인생에서 공공선을 위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시간이다.

  가장자리를 넘어 레너드 코언이 ‘불굴의 패배invincible defeat’라고 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날들을 내다보건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 길이 기나긴 내리막길이라는 사실이다.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인가? 바위처럼 말없이 떨어질 것인가?(15쪽)


본문의 일부를 인용할 때 파괴될 수 있는 논리의 흐름을 복원하기 위해 문단 순서를 뒤집는다. 뒤집을 때 맨 앞에 오는 문장의 번역과 원문 일부를 의미의 선명성을 고려해 바꾼다.


가장자리 너머 레너드 코언이 ‘불가항력적 패배invincible defeat’라고 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날들을 내다보건대, 내가 확실히 아는 바는 그것이 아뜩한 낭떠러지라는 사실이다.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인가? 바위처럼 떨어질 것인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할 뿐이다. 인생에서 공공선을 위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시간이다.


노동운동하다가 진보정치판 깊숙이 몸담았던 제자가 어느 날 술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이제 사적 영역 안에서 편히 지내신다 해도 뭐랄 사람 없습니다.”


그의 충정과 무관하게 이 말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 부끄러움은 즉각 또 하나의 파장을 일으켰다. 백세시대라고 말들 하지만 예순 남짓해도 어떤 면에서 나이 든 것이 분명하구나. 은퇴란 말과 연동될 때 현대사회에서 나이 든 것은 대접의 상대가 아니라 취급의 대상이다. 그래. 그렇다면 은퇴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할 뿐”이니 말이다. 단, 도리어 사적인 영역 안에서만 그렇다. “인생에서 공공선을 위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시간”이니 든 나이에는 공생애의 출사표를 던질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공생애가 마치 은퇴자를 위해 남겨진 삶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예수를 떠올리면 생각은 단박에 전복된다. 예수는 삼 년의 공생애를 위해 삼십 년을 준비했으니 말이다. 인간다운 인간이려 할 때, 가장자리를 향해 내공을 쌓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내공은 사적 영역, 그러니까 소아小我의 거점을 지워가는 과정에서 쌓아진다. 소아의 거점을 지우면 노후의 안락 대신 공동체를 위한 위험한 짐을 기꺼이 진다. 그 위험한 짐을 지고 가장자리 너머를 향해 가는 나이 든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 진정한 어른의 길을 우리는 신의 길이라 한다.


신의 길, 그 끝은 아래로 이어진 낭떠러지가 아니다. 광활한 허공이다. 신은 허공을 향해 비상한다. 비상은 새로운 창조를 일으킨다. 창조 비상을 위한 구름판이 바로 가장자리다. 가장자리는 죽음을 가리키는 이정표인 것 이상으로 장엄을 알리는 팡파르다. 팡파르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금 가장자리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겨드랑이가 근질근질하다. 날개가 돋으려나보다. 55kg밖에 안 되니 날개가 그리 클 필요는 없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