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 노벨상 수상자 버나드 라운이 전하는 공감과 존엄의 의료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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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 청취는 의술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소비되는 시간은 전인적 치유를 위한 아주 작은 투자며 그 자체로 치료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103쪽)


  병력 청취가 그만큼 중요하다면, 의사가 병력을 청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의학적인 문제와 함께, 증상 뒤에 숨어 있는 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병력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의사는 환자를 한 인간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는데, 환자의 기본적인 정보인 가족·교육·직업 등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환자가 가진 특성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무엇이 ‘오늘의 그’로 만들었는지 이해하며·······(62쪽)


한 사회를 알려면 아픔과 슬픔이 괴어 있는 곳을 보면 된다. 가장 약한 곳이 그 사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의 가장 약한 곳, 그러니까 병든 곳을 통해 본질을 알 수 있다. 병은 그 사람의 본질을 정색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는 상황임을 알리는 전령이다.


문제는 견지망월見指忘月. 사람은 보지 않고 병 때려잡는 일에만 골몰하는 의술과 의사가 결국 사람 자체를 때려잡는다. 이 시대의 주류의학은 사람에게서 병을 떼어내 그것만 제거하는 기술 포르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병을 제거하면 사람이 건강해지는가? 그럴 리가.


병의 메시지를 누락시킨 채 병만 제거한 사람이 건강할 리 없다. 건강한 사람은 단순히 병 없는 사람이 아니다. 병의 아픔痛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변화가 진리다無常. 진리는 경이다. 경이는 찰나마다 에고의 거점을 지운다無我. 에고의 거점을 지우는 시공에서 모든 존재는 무애자재로 어우러져 아름답게 완성된다.


완성된 존재는 상처가 피워낸 꽃이다. 그 꽃을 피워내게 돕는 것이 의술이며 의사다. 의술과 의사가 병을 통해 인간에 배어들지 못하는 폐허에는 토건만이 무성해진다. 부단히 병을 짓고 허물어 수익을 창출하다가 종당에는 연명 기술로 착취를 마무리한다.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모두를 능멸하는 반인간적 마케팅으로 대박을 친다. 브라보!


진정한 ‘브라보!’는 병을 교두보 삼아 의술과 의사가 인간이란 본진으로 육박해갈 때 일어난다. 타자가 극진한 손길로 자신을 탐색해 들어올 때 전율하지 않을 이 누군가.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전환해 나아갈 때 감격하지 않을 이 누군가. 본진 놓친 대박은 가짜다.


가짜가 진짜 나쁜 이유는 진짜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비슷해서다. 비슷한 것들의 천국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비슷한 것들에게는 중독의 매혹이 있다. 중독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파멸적 황홀 때문이 아니다. 감각의 퇴행 때문이다. 무감각의 지옥을 향해 우리는 가고 있다. 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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