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 노벨상 수상자 버나드 라운이 전하는 공감과 존엄의 의료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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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의 병력을 듣는 목적 중에는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도 있지만, 환자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환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도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듣기는 의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에 속한다. 의사는 환자가 말하지 않는 문제까지 들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36쪽)


말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는 이치는 너무 익숙해서 소홀히 여겨진다. 다시 정색하고 살피건대, 근본적으로 듣기는 말하기 다음에 온다. 말하기 온 과정을 기다리면서 말해진 그대로 듣는다. 그대로 들으므로 듣기는 듣는 사람이 마음을 열고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히 들어오게 한다. 온전한 듣기는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가 아니다.


이런 내 생각은 저자와 다르다. 같은 사태를 다른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라고 눙칠 수 없다. 숙의로 치유하는 동안, 내가 아픈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고 들은 적은 없다. 그들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도록 넋 놓고 하염없이 듣기 위해 나는 내 거점을 지우는 곡진함에 들었을 따름이다. 아픈 사람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자신의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려고, 치유하는 사람의 판을 치워 놓는 무無(위爲)의 감수성에서 나온 자세다.


무(위)의 감수성은 말하지 않는 문제까지 들으려 할 때,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믿고 맡기는 고요함이 아픈 사람의 말과 말 사이 침묵에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느슨하게 그물을 풀어놓으면 오히려 빠짐없이 걸린다[天網恢恢 疏而不漏천망회회 소이불루].


버나드 라운에게는 요령부득의 이야기다. 그는 그의 감수성으로 질병 너머 인간을 포착한다. 나는 나의 감수성으로 그리 한다. 이 비대칭의 대칭은 세계 구성·운동의 이치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진실일 수는 없다. 가능하다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문제는 현실에서 치료자가 환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의사는 기계가 제시한 진단 결과와 제약회사의 처방 매뉴얼에 따를 뿐이다. 무위고 유위고 간에 아픈 사람의 말을 들어야 무슨 교류든 할 것 아닌가. 아픈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시공에서 예술 치유가 일어나는 법은 없다. 인간이 듣는 인간homo auditus이라는 진실은 의료화사회에서 더욱 뼈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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